북·중·러 3국 접경지 인 하산역 일대 를 살펴보려던 계획은 러시아 의 불허로 무산됐다. 하지만 크라스키노 전망대에 오르니 바다 너머로 하산의 들녘이 보였다. 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들 뒤로 왼쪽 이 러시아 하산이며 오른쪽은 중국 훈춘(琿春) 방향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평화에 대한 갈망이 지역 차원에서 확고하게 뿌리내린 유럽과는 달리 동북아는 무엇보다도 지역적 실체가 모호해 과거의 유럽만큼 심각하지는 않되, 위협적인 중·일의 패권 경쟁과 그에 따른 구심점의 부재가 불안정 요소로 잠재해 있다. 유럽연합의 현재 위기는 중동전쟁으로 노골화되었지만 유럽 스스로 통합의 가치를 세우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 속에 안이하게 편승하려던 결과이며 이는 유럽 내부에 남아 있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업보이기도 하다. 또한 자본의 반복성 또는 강박성에 의해 유럽 통합의 역사가 동북아에서 재현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좌우할 나라는 중국, 일본 또는 미국이지 한국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북한을 ‘평화의 장’으로 포섭해 내지 못하는 한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한반도의 분단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정치·경제·문화적 발전을 저해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제약하는 근본적 위기의 요인이기도 하다. 현재의 세계적인 공황과 한반도가 부딪힌 정치·경제적 한계를 극복하고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도 국가 경영에 대한 비약적인 상상력과 기획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은 방향을 돌려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 왔다. 한반도 북방에는 극동 시베리아와 만주와 몽골에 이어서 중앙아시아에 닿는다. ‘초원 길’은 고구려 이전부터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이었다. 고대 사서에서도 고조선의 신시처럼 이들 다양한 민족과 문화와 교역이 기록되어 있으며 사실 고구려와 발해는 ‘유목연합’이었던 셈이다.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두만강 하구의 하산(북·중·러 접경) 지역을 답사하려던 기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훨씬 북쪽의 자루비노 항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수년 전까지 속초에서 이어지던 이 항로가 금강산 관광 길이 막히면서 사실상 한산한 지역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청년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해 처음 부임했던 직임이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 만호였음을 기억해 냈다. 모래톱으로 이루어진 녹둔도는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연륙되어 러시아 땅이 되어버렸다. 수년 전에 압록강, 두만강 국경지대를 한 달 동안 답사하면서 보았던 금삼각 일대를 떠올렸다. 북한, 러시아 그리고 겨우 오솔길 하나가 중국 영토로 맞닿은 그곳은 과거의 패권을 겨루던 역사가 어떻게 또 다른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러시아 하바롭스크 공항에서 만난 북한 근로자들. 3년 만에 북한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엊그제의 일도 쉬이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특성을 떠올리며 북핵 문제의 연원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분단 이후 내전이면서 국제전이라는 한국전쟁을 겪었고 이로써 유럽에서 극동에까지 이르는 세계적 냉전 체제가 완성되었다. 1990년에 냉전이 해체되고 동서독이 통일되면서 동유럽의 사회주의권이 붕괴된다. 남과 북은 유엔에 개별 국가로 가입한다. 이는 분단의 고착화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교차승인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즉 러시아, 중국은 남한을 승인하고 미국, 일본은 북한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남한과 외교관계를 가지게 되었으나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승인하기를 유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