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5.04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생태계의 안정성을 가늠하려면 대체로 두 가지 속성을 분석한다. 저항력(resistance)과 회복력(resilience)이다. 저항력이란 자연재해·질병·경쟁 등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생태계가 얼마나 잘 버티는가를 나타내며, 회복력은 일단 피해를 입고 난 다음 얼마나 빨리 안정 상태로 되돌아가는가를 의미한다.
강원대 생명과학부 정연숙 교수는 환경부 국가장기생태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996년에 일어난 강원도 고성 산불 피해지역의 생태계 복원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일부 지역의 회복은 놀랍도록 빠르다. 건강한 숲일수록 토양 속에 풍부한 씨앗은행을 갖고 있어 언제든지 힘차게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있는 법이다.
나는 기업생태계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요소들도 자연생태계와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국제유가·환율·천재지변 등의 외부 변화에 대한 산업계의 적응도 결국 저항력과 회복력의 문제일 것이다.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경제침체를 겪으며 상위 25%의 기업 중 40%가 순위에서 밀려나는 반면, 후발업체가 선두업체로 올라설 확률은 호황기보다 불황기에 20%나 더 높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순위 변동은 정작 불황기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경쟁을 시작할 때 벌어진다는 것이다. 위기 속에서도 누가 새로운 씨앗을 더 많이 비축하는가에 승패가 달려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 17일 미국과학재단에 30억달러(약 4조원)의 추경예산을 배정했다. 재단의 예산을 무려 50%나 올려주는 통 큰 결정을 내리며 그는 "이 투자가 경제를 더욱 강하게, 나라를 더욱 안정적으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 지구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과학재단은 이 중 20억달러를 예산 부족으로 탈락시켰던 수많은 프로젝트에 다시금 지원하기로 했단다.
우리 국회는 지금 쥐꼬리만한 과학기술 추경예산을 놓고 그나마 누굴 줄까 저울질하고 있다. 나는 올해 정초에 읽은 어느 대학 총장님의 간절한 호소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공공부문에 투자하기로 한 재원의 단 10%라도 새로운 기술과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R&D 부문에 투자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호소를 엉뚱하게도 오바마 대통령이 엿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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