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조인원의 사진산책] 카메라는 어깨에 걸치는 명품 백이 아니다

바람아님 2016. 10. 6. 09:52

(조선일보 2016.10.06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모두가 쉽게 사진 찍는 시대… 잘 나온다고 '진짜 사진'일까
원하는 사진 찍고 싶으면 장비나 기술에 신경 쓰기보다
구도나 광선에 시간 투자해 다르게 보고 다르게 찍어야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무슨 카메라를 사야 해요?" 직업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솔직히 잘 모른다. 30년 가까이 사진을 찍었지만 내가 직접 써본 카메라들만 안다. 
그러니 그것들이 최고였다고 추천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요즘 스마트폰이 잘 찍히니 그걸로 그냥 찍으라" 권하고 싶진 않다. 아무리 폰카가 
잘 나와도 카메라를 따라올 수는 없다.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한 도구는 아직은 카메라다.

앤설 애덤스(Adams)나 배병우는 협곡이나 소나무 같은 풍광 사진을 찍어 크게 뽑아 전시한다. 
그럴 계획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삼각대와 대형 카메라를 권할 수는 없다. 
또 자연 생태 사진이나 역동적인 스포츠 사진을 찍지 않는다면 고속의 연사(連寫) 기능이 있는 값비싼 카메라와 
600㎜ 망원렌즈가 필요할까.

"비싼 카메라가 꼭 좋은 카메라인가?"라는 질문도 많다. 
한정판 에어조던 신발을 신었다고 모두가 덩크슛을 할 수 없듯, 그림으로 치면 붓이나 물감 같은 카메라는 사진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Cartier-Bresson)이나 세바스치앙 살가두(Salgado)가 쓰던 것과 같은 기종 카메라를 
샀다고 그들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카메라는 멋져 보이려고 메는 명품 백이 아니다. 
카메라로 어떤 사진을 찍을지, 자기 용도에 따라 고르는 게 맞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카메라로 찍는 게 사진이다. 
목적에 맞는 적당한 카메라를 하나 골라 익숙하게 쓰는 게 맞다. 렌즈도 마찬가지다. 
하나씩 모으다 보면 꼭 이걸 사야만 좋은 사진을 찍을 것 같지만 50㎜ 표준렌즈 하나로도 웬만한 사진은 다 찍을 수 있다. 
표준렌즈로 피사체 가까이 다가가면 망원렌즈 효과를 내고 뒤로 물러서면 광각렌즈를 대신한다.

카메라가 좋아진 지금, 제대로 사진 찍기 위한 기술을 배우던 시절은 지났다. 
제대로 찍는 사진은 초점이 맞고 노출이 맞는 사진이다. 
15년 전쯤 사진가인 친구가 손에 쏙 들어가는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를 써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무렇게나 눌러도 사진이 잘 찍히는 게 문제야." 
사진이 잘 찍힌다는데 카메라가 뭐가 문제일까? 자동으로 초점이 맞고, 노출이 맞으니 누가 찍어도 비슷하게 나온다. 
다르게 찍을 수가 없다. 잘 찍는 사진 기술은 디지털 자동카메라가 그때 이미 해결했다. 
지금은 그 기능을 스마트폰이 한다. 누가 찍든 어느 것으로 찍든 스마트폰 사진은 비슷하게 나온다. 
사진의 기술을 논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필름 카메라 쓰던 시절의 얘기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사진은 잘 나오는 게 전부가 아니다. 

남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찍어야 사진은 재밌다. 그때 비로소 진짜 사진이 시작된다. 

사진가들이 자동 놔두고 수동으로 사진 찍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카메라가 알아서 찍는 사진이 아닌 사람의 의도대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일부러 사진을 어둡거나 대상의 움직임을 흘려서 찍을 수도 있다. 

매뉴얼 모드일 때 수많은 선택의 권리가 '찰칵!' 순간을 누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과연 필름 때보다 훨씬 좋아졌을까? 

카메라가 디지털로 바뀐 이후 사진가들이 늘고 카메라는 좋아졌지만 얼마나 더 좋은 사진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장비는 좋아진 만큼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가의 치열함도 계속되고 있을까? 

이제 사람들은 사진을 쉽게 찍고 쉽게 만족한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지우면 되니까. 

카메라 뒤에 달린 액정화면은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하게 해준다. 

사진을 찍고도 필름을 꺼내 한참 후에 사진을 확인하던 어려움이 사라지고, 빠르게 찍고 바로 만족하는 습관이 굳어졌다. 

잘못 찍은 사진을 고치기도 쉽다. 

디지털은 원래 그런 거니까. 더 이상 잘 찍고 못 찍는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어떻게 찍어도 페북에 띄우면 친구들한테 '좋아요'만 수십 개를 받는 사진에. 사진을 뽀샵으로 고치는 그림 수준으로 

만족한다면 사진은 취미도 뭣도 아니다. '좋아요'가 몰리는 사진 중엔 진짜 좋은 것은 드물고 졸리게 하는 것은 많다.

카메라나 렌즈에 대한 욕심이 나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만큼 좋은 사진에 대한 차이를 느끼면서 사진의 깊이를 알아가기 때문이다. 

카메라 기종과 렌즈에 따라 결과물의 차이는 있다. 

문제는 카메라  장비만 계속 바꿔가면서 욕심으로 이것저것 사 모으다가 지쳐서 정작 사진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져 버리는 데 있다. 값비싼 장비에 투자했던 많은 지인이 그랬다.


사진은 상상력이나 어떻게 보는가에 따른 결과의 기록이지, 애초에 카메라 장비나 초점을 맞추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 등 장비보다 구도나 광선에 투자하는 편이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