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17 김은경·한국전통조경학회 상임연구원)
내 방 창문엔 커튼이 없다.
글씨 쓰는 친구가 한지에 쓴 한시(漢詩)를 유리창에 붙여서 커튼 대용으로 삼았다.
한여름 달 밝은 밤이면 유리창에 어리는 달빛을 받아 한시가 은은하게 비친다.
이렇게 붙여놓은 한시 커튼은 시간이 지날수록 닳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새로운 글을 받아서 새 커튼으로 사용한다.
한지가 아닌 살아 있는 커튼이 있다. 덩굴식물이 그것이다.
덩굴식물의 줄기는 다른 식물의 줄기에 비해 가늘고 약하다.
연약한 줄기를 가진 덩굴식물은 다른 식물에 의지해 자라게 된다.
다른 식물이나 물체에 기대거나 감으며, 또 흡착기를 발달시켜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자란다.
덩굴식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커튼이 풍선덩굴이다.
풍선덩굴의 꽃은 아이들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하얀 꽃을 피운다.
꽃자루 끝에는 한 쌍의 덩굴손이 있어서 줄기가 뻗어나간다.
꽃이 진 자리에는 처음에는 납작하고 작은 열매가 달린다.
이 열매가 점점 커져서 둥근 풍선 모양의 열매가 달리게 된다.
초록색 풍선 모양의 열매가 요즘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갈색 열매는 팽팽한 둥근 모양이 아닌 바람 빠진 공처럼 변해간다. 그러나 그 속에는 씨앗이 자라고 있다.
3개의 씨가 들어 있는데 씨앗마다 하트 모양의 하얀 점이 있다.
까만색 씨앗 가운데 하트 점은 내년을 약속하는 풍선덩굴의 마음이 아닐까.
한 알만 심어도 3m 이상으로 자라고 주렁주렁 풍선을 매달아 놓는 풍선덩굴.
여름 내내 초록 커튼이 되어 주고 이제 마음을 새긴 씨앗을 남기고 풍선덩굴은 죽어갈 것이다.
초록의 기억을 남기고 스러져가는 풀을 다시 보기 위해 풍선덩굴의 씨앗을 수확해야 할 때가 왔다.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씨앗 사진을 보여주며, 씨앗이 있음을 자랑하고 으스대면서 씨앗을 나누어주려 한다.
이 씨앗 한 알이면 여름 내내 무성한 초록을 경험할 수 있다고. 또한 아름다운 풀씨를 볼 수 있다고.
풀씨 한 알을 주면서 생색내는 유치함이 뿌듯함으로 바뀌려면 이 시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깊어가는 가을. 풀씨를 거두며 이 계절을 보내려 한다.
블로그에서 풍선덩굴과 씨앗의 사진 보기 :
'人文,社會科學 > 日常 ·健康'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슈탐색] 삶이 '불안'한 한국 노인들 (0) | 2016.10.19 |
---|---|
英 연구기관 "한국인, 술 살 1위국" ..하루 평균 술로 168kcal 섭취 (0) | 2016.10.17 |
물 너무 많이 마셔도 위험한 이유 (0) | 2016.10.16 |
계절성 우울증은 햇볕이 특효약 (0) | 2016.10.15 |
블랙커피가 몸에 미치는 영향 6가지 (0) | 2016.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