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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회사, 다니면 다닐수록 멍청해져?

바람아님 2016. 10. 23. 23:45
[중앙일보] 입력 2016.10.2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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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진/JTBC 사회1부


“TV에 해고된 사람들의 시위는 이해가 안 됐어. 다른 회사에 가면 되잖아? 라고 생각했지. 회사를 다니면서 알았어. 자꾸 이 회사에서만 일할 수 있는 부속품이 된다는 걸.”

친구 S가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한 지 4년. OO맨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늘었다. 사내 시스템에도 능숙해졌고 기피하는 주말 당번을 자처하며 상사들의 신망도 얻었다. 일 잘한다는 소리에 가끔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중 어떤 것도 경력기술서(CV)에 쓸 만한 것은 없었다. 모든 결정이 윗선에서 이뤄지는 회사 환경에서 그럴듯한 업무경험을 쌓기도 힘들었 다. 도리어 줄곧 하던 영어는 점차 버벅거렸고, 쉬는 날엔 침대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젊은 감각도 떨어졌다.

“월급은 따박따박 들어오는데 커리어는 안 생기더라고. OO맨으로 늙다가 이 회사 나가는 순간 백수구나, 싶은 거야. 70세까진 일해야 하는 시대인데….” 친구는 퇴직을 결심했다.

우리나라 20~30대의 인적자본 저하율은 에스토니아·폴란드에 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위다. 조사에 따르면 학생일 때 최상위권이던 한국인의 능력은 일을 하기 시작하면 중하위권으로 급격히 떨어진다. 40대, 50대에는 더 급격한 절벽이다. 조사에 참여한 19개국 중 12곳이 입사 후에 업무 능력이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보고서는 “추가적인 교육·훈련, 지적으로 자극을 받는 일터 환경이 없어서”라고 분석했다.

일반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교육·훈련에 대해 물었다. “임원을 뺀 직원들의 커리어 관리, 평생학습은 안중에도 없음. 그룹에서 중국어를 강조하면 중국어 강의를 잠깐 만드는 수준”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반면 해외에서 취업한 친구들은 “단계마다 필요한 업무 능력, 스킬을 분석해 회사와 상사가 적극 지원”(프랑스 보험회사), “입사 첫날부터 직속 상사, 인사임원과 1·3·5년 장단기 커리어를 계획한다(미국 IT회사)”고 했다. 회사가 개개인의 경쟁력을 쌓아 주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게 공통적인 답변이었다.

‘평생직장 DNA’를 못 버린 기업에서 2030은 괴롭다. 외환위기를 보며 자라 평생직장을 믿지 않는 세대다. ‘상사의 눈에 드는 게 커리어 관리’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와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평생직장 시절에야 탬버린이 ‘커리어 관리자’였겠지만 지금은 ‘커리어 방해자’다. 직원들의 시장 경쟁력을 키워 주는 데 무관심한 한 청년인재들은 회사에 더 붙어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청년들은 사표를 쓴다.

SBS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에서 각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 입사한 이후에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청년들은 답한다. “생각이 있기 때문에 답 없는 회사를 나간다”고.

구혜진 JTBC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