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46점이 있고 국내에는 5점만 있다고 한다. 이번에 전시된 ‘수월관음도’는 일본에서 영구귀국한 작품으로 그 의미가 각별하다. 그림 기증자는 한국콜마홀딩스의 윤동한 회장이다. 재일교포 2세가 소장하고 있던 그림을 25억원에 사들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지난 17일 기증식에서 윤 회장은 말했다. “7년 전,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해설사가 ‘수월관음도’는 한국 국립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마침 일본의 소장자가 그림을 살 사람을 알아보고 있다고 해 인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문화재의 소중한 가치를 알아보고 나아가 ‘공공의 문화재’로 인식한 윤 회장의 혜안이 실로 놀라웠다. 개인 소장의 문화재를 사적으로 거래하는 일은 합법이다. 그런데 윤 회장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비로 사들이고 이를 다시 박물관에 기증했다. 참으로 속 깊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돈 많은 사람의 호쾌한 기부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이나 글씨, 도자기 등 최고의 아름다운 예술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잠재된 본능이다. 오죽하면 중국에서는 밉상인 부자를 빨리 망하게 하려면 노름과 주색을 권하고, 서서히 망하게 하려면 도자기에 마음을 뺏기도록 유혹하라고 하겠는가. 요즘은 가치 있는 예술작품을 많이 소장한 이들에게 돈과 문화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개인이 사심을 버리고 공공의 문화재로 기증하는 일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윤 회장의 소식을 듣고 떠오른 이가 간송 전형필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간송이 아니었다면 우리 문화재 다수가 해외로 유출되어 지금쯤 그 나라의 보물이 되었을 것이다. 1906년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전형필은 20대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오세창 선생의 영향을 받아 문화재의 가치에 눈을 뜬 그는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이 민족정기를 지키는 일임을 자각하고, 사재를 들여 유실될지 모를 미술품 등을 사들였다. 당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태준이 훈민정음 해례본 책값으로 1000원을 달라고 했을 때, 전형필은 소개비로 1000원을 주고, 책값으로 1만원을 지불하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유산은 대략 12만점이라고 한다.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약탈당했다. 일본에 6만여점, 미국에 2만여점 그 외 중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수천점의 약탈된 우리 문화유산이 그 나라 박물관에 ‘세계 문화’라는 외피를 쓰고 전시되어 있다. 이에 비해 해외문화재 환수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미약하다. 이집트와 페루는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빼앗긴 문화유산을 거의 돌려받았다고 한다. 제집에 있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문화유산은 해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개인 소장’ ‘박물관 소장’이라는 포장으로 공공의 유물이 다수 숨어 있다. 불교계의 경우도 많은 전통사찰의 문화유산들이 일제강점기의 허술한 틈을 타서 슬그머니 개인의 벽장과 금고 속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다. 근래 어느 개인이 대흥사의 유물을 모아 사설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이렇듯 소장처가 분명한 공공의 문화유산이 몇 단계를 거쳐 돈으로 거래되고 사적인 교분으로 흘러 제자리를 떠나 있는 것은 사회적 문제다. 이는 ‘윤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정당하게 승계된 문화유산을 개인이 사유화하는 것은 법적인 차원에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 걸음 나아가, 인문 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도덕과 윤리의 관점에서 공공재로서의 문화재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마하트마 간디는 일곱 가지 사회악을 경계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 양심 없는 쾌락이다.
여기에서 도덕과 윤리는 기본적으로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 전통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엄정한 도덕률이 필요하다. 문화유산의 소장과 거래에 공소시효는 있겠지만, 문화유산의 공공성과 윤리에는 시효가 없다. 한 개인의 노력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수월관음도’. 수월관음은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맑고 아름다운 보살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높은 하늘의 달이 여러 물에 두루 비치듯, 수월관세음보살은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어 하신다.
<법인 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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