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내 자랑

바람아님 2016. 11. 26. 12:17

(조선일보 2016.11.26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가슴으로 읽는 한시 일러스트

내 자랑


영장산 한 자락이 내가 사는 마을인데

오십 평생 내 맘대로 호화롭게 즐겼어라.


산골에 뿜는 폭포수는 웅장한 대취타요

숲을 에워싼 새소리는 생황의 연주일세.


봄 산은 기생인 양 꽃 비녀를 꽂았고

가을 잎은 멋진 누각에 비단 장막 펼쳤구나.


서생의 관상이 박복하다 말도 꺼내지 마라.

한량없는 청복을 누려 내가 봐도 자랑스럽다.


自矜


靈長一麓是吾鄕(영장일록시오향)

獨擅豪華五十霜(독천호화오십상)


噴壑瀑流臧鼓吹(분학폭류장고취)

繞林禽韻奏笙簧(요림금운주생황)


春山妓女花鈿擁(춘산기녀화전옹)

秋葉綺軒錦幕張(추엽기헌금막장)


莫道書生骨相薄(막도서생골상박)

自矜淸福享無疆(자긍청복향무강)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성남시 분당의 영장산 아래에 살았다. 

50 평생을 한적한 산 밑에 살면서 자기만큼 호사를 누리며 산 사람 없다며 허세 가득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골짜기로 뿜어대는 폭포수는 웅장한 대취타(大吹打)와 다름없고,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고상한 생황 연주 그 자체다. 

봄철 산은 꽃 비녀를 꽂은 아름다운 기생이고, 

단풍에 물든 가을 산은 화려한 난간에 펼쳐놓은 비단 장막이다. 

서울 사는 고관들이나 부자들은 큰 잔치에서 멋진 음악 듣거나 화려한 저택에서 기생 끼고 놀지만 

그들보다 내가 못할 게 하나 없다. 

박복하게 생겨 벼슬 한자리 못 하고 촌구석에 처박혀 산다고 비꼬지 마라! 

청복을 마음껏 누리는 내가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