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28 박정훈 논설위원)
피델 카스트로는 평생을 군복 차림으로 지냈다. 늘 혁명을 상징하는 초록색 군복에 시가를 문 모습이었다.
여든에 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아디다스 운동복으로 바뀌었다.
교황을 만날 때도, 일본 총리가 왔을 때도 색깔만 바꿔가며 운동복 차림으로 나왔다.
서민적인 그의 삶은 쿠바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경호원 중엔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국민 지지가 뒷받침됐기에 600여 차례 미 CIA의 암살 시도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쿠바 국민의 생활은 고달팠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 쿠바 경제는 붕괴 위기에 몰렸다.
치즈가 없어 콘돔을 녹여 피자에 뿌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쿠바를 탈출하는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나무 상자며 스티로폼 뗏목에 목숨을 건 보트피플이 많을 때는 1년에 수십만 명에 달했다.
카스트로의 여동생과 딸·손녀까지 미국으로 망명할 정도였다. .
▶쿠바의 학교 교실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사진이 걸려 있다.
체 게바라는 반(反)자본주의 투쟁에 39년의 짧은 인생을 바쳤지만 사후엔 상업적으로 활용됐다.
롤렉스 광고의 모델이 되는가 하면 그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숱하게 제작됐다.
'체 게바라 마케팅'에 나선 숨은 기획자는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정부였다.
쿠바 정부는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체 게바라 묘역과 쿠바 혁명 성지를 둘러보는 여행 코스를 열심히 팔았다.
▶카스트로는 쿠바를 자본주의 요소를 몰아낸 이념의 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쿠바 국민의 풍요를 추구하는 본능까지 없애진 못했다.
8년 전 정권을 물려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부분적인 시장경제 실험에 나서자 자본주의 열망이 폭발했다.
수도 아바나에서 샤넬 패션쇼가 열리고 할리우드 영화 '분노의 질주8'이 촬영됐다.
외국인 관광객을 받으려 온라인 숙박 서비스 '에어비앤비'에 가입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체 게바라의 아들은 미국 문화의 아이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쿠바를 일주하는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쿠바에선 공산주의란 말이 본래의 뜻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쿠바 여행기를 펴낸 정승화 영화감독은
쿠바 젊은이들 사이에 '공산주의'가 속칭 '구리다' '안 좋다'를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고 전했다.
평생 질박한 반자본주의 세상의 이상을 버리지 않았던 카스트로는 이 사실을 알았을까.
카스트로의 가장 큰 기여는 혁명과 현실의 머나먼 거리를 일깨운 것인지 모른다.
카스트로 사후(死後)의 쿠바가 어떤 변화의 물살을 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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