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Why] 밥 딜런의 '선약'.. 그리고 노벨상 시상식

바람아님 2016. 11. 27. 00:15
조선일보 2016.11.26 03:03

[남정욱의 명랑笑說]
시상식 안 가겠다는 딜런
로커의 '반골 기질' 보여준 너무나 쿨한 '한 방'

그다지 밥 딜런 좋아하지 않았다. 뛰어난 작곡가는 맞지만 연주도 그냥 그렇고 노래를 듣고 악보에 보컬 멜로디를 옮기는 일이 어려울 정도로 음이 불확실한 사람을 가수로서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마구 좋아졌다. 무엇보다 음악인으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노벨상 준다는 소식에 오래 침묵하고 있다가(너희가 준다고 하면 네~ 감사하며 받아야 하니?) 수상 날짜 다가오니까 선약이 있어서 못 간단다.


노벨상 시상식에 선약으로 대응이라. 이건 트럼프하고 온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약속 수준이 아니면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핑계다. 노벨상을 거부하거나 안 받으러 간 경우는 이제껏 몇 안 된다.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정치적 이유로 수상을 거부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사르트르는 문학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들의 악질적 취미라며 수상을 거부했고 버나드 쇼는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 팔아먹던 사람이라는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나중에는 받았다). 거부 말고 시상식에 불참한 경우는 딱 셋이다. 고령, 입원 중, 공인된 대인기피증이 그 이유였다. 여기에 하나가 추가됐다. 선약. 하하하, 이건 정말 멋진 한 방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핑계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럼 밥 딜런이 상 받는 걸 싫어하느냐. 절대 아니다. 이제껏 미국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열두 번이나 받았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 나가서 직접 받았다. 세상의 가치는 노벨상이 윗길인지 몰라도 음악인 밥 딜런에게는 그래미가 더 위였던 것이다.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 밥 딜런에게 노벨상을 준 이유라는데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이라면 아마 로큰롤(rock'n'roll)일 것이다. 동의한다. 백인의 컨트리와 흑인의 블루스가 만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음악이 탄생했다. 그런데 '그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는 부분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유라면 수상은 차라리 사이먼과 가펑클에게 돌아가야 맞는다. 밥 딜런 가사는 너무 쉽거나 가끔은 너무 어렵다.


그리고 스웨덴 한림원은 착각하는 게 있다. 노래에서 가사는 선율 안에서만 그 의미가 있다. 우리가 '예스터데이'나 '마이 웨이'를 좋아하는 것은 선율이 미려하기 때문이다. 멜로디가 좋으니까 노랫말도 덩달아 울림이 큰 것이지 그 반대는 없다. 선율을 벗어나는 순간 밥 딜런의 가사는 '끼적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밥 딜런 수상 직후 국내 팝 칼럼니스트들이 그의 가사를 어떻게든 멋지게 포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노래와 결합되어 문학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고 했으면 동의했을 것이다.


한림원은 파격적 행사로 관심을 끌어보려 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반골 기질로 평생을 살아온 음악가 밥 딜런은 한림원의 적당한 파트너가 아니었다. 상을 받게 되면 6개월 안에 강연해야 한다. 밥 딜런이 그 규정을 지킬지도 관심이 쏠린다. 개인적으로는 안 한다 쪽이다. 아니면 록 콘서트로 대체하거나. 선약이 있어 못 간다는 그의 말은 아무리 호의적으로 해석해도 이 표현 이상이 아니다. "주니까 받기는 한다만 시상식까지 오라는 건 너무 과한 발상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