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20 길해연·배우)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창가 쪽 일인용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아 이런, 등 뒤의 연인들 소리가 너무 잘 들린다.
둘은 무슨 일인가로 다투고 있었고 여자는 남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미안해." 길고도 긴 다툼 끝에 남자가 퉁명스레 내뱉은 그 말에 여자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음이 어찌나 서럽던지 돌아앉아 등이라도 쓸어주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결국 여자가 밖으로 뛰어나가고 허겁지겁 남자가 그 뒤를 따라나갔다.
그제야 그들이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입도 안 댄 식어버린 커피와 눈물을 닦고 버린 휴지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는
테이블 위로 '미안해' 라는 단어가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남자는 왜 진작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버티면서 여자를 힘들게 만든 걸까?
본의 아닌 염탐꾼 노릇으로 얻어낸 그들의 싸움 사연은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었다.
남자의 전화가 온종일 꺼져 있었고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걱정으로 여자는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자
걱정은 의심으로 바뀌고 의심은 분노로 둔갑을 하고 그 분노에 대한 남자의 '전화기가 꺼져 있는 줄 몰랐어'란
무심한 답변은 여자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야 말았다.
'그럴 수도 있지 뭘'이라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내가 너한테 그것밖에 안 돼?' 따지기 시작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가
웬 자다가 봉창인가 싶어 할 말을 잃고, 그러다 보니 이 자그마한 카페에서 옆 사람 아랑곳하지 않고 다투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남자는 미안하다고 말해버리고 나면 그 여자가 자신을 마음껏 비난해도 되는 자격이라도 얻은 것 마냥 굴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밖에서도 한참을 다투다 돌아서는 두 사람을 보다가 갑자기 똑똑 창을 두드려 남자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저기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건 그 사람이 나로 인해 받은 상처에 대한 공감을 하고 있고 그 상처를
위로해주고 보상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당신의 '미안해'라는 말에는 그 마음이 빠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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