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에 첫 입주자로 전세를 살다 이사하게 되었다. 안방의 침대를 들어내자 그 밑에 가늘고 깊게 파인 상처가 드러났다. 관리비를 정산하고, 이삿짐 업체와 통화를 하고, 강아지를 맡기고, 김밥을 한 줄 사 먹고 돌아왔더니, 집주인의 대리인이라는 여자가 와서 그 흠에 대해 트집 잡기 시작했다. 집주인은 지방에 사는 그녀의 큰언니인데 동생의 말을 듣고 투자 목적으로 신도시의 새 아파트를 샀던 것이다. 그러다 시세가 오르자 전세입자인 우리가 나가는 시점에서 이 집을 팔려고 내놨고 다행히 사려는 사람이 있어 매도하게 되었다. 그런데 매수인이 이 상태를 보면 분명히 꼬투리를 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바닥을 원상복구 해 놓으라는 것이다.
살다보면 생기는 생활 흠집이라고 말하기엔 바닥의 상처는 깊었다. 이삿짐 옮기는 분들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원래 있던 것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금방 생긴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그 상처에 대해 알지 못하고, 몇 사람은 그 상처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아무래도 그 흠은 2년 전 이사 올 때 생긴 것 같다고 했지만, 어떤 말이든 면피용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은 보상 아니면 원상복구였다. 왜 나는 내 방에 난 상처를 몰랐을까? 그것을 몰랐던 것도 내 책임일까? 내가 집주인이라도 저렇게 냉정하게 말할까? 그러나 입장을 바꿔보면 그녀는 집주인에게 부동산 정보를 제공한 책임을 다하려는 것뿐. 만약 이 집이 오래된 아파트였고, 살던 사람들이 계속 바뀌던 집이었다면?
새 아파트의 첫 상처로 쓸데없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첫 번째 내 집’으로 아파트를 사서 이사 오던 4년 전. 그리고 융자로 허덕이다 집을 팔고, 같은 단지에 전세를 얻어 이사 오던 2년 전의 기억까지. 세입자로 내가 남긴 저 상처는 첫사랑의 상처와 같았다. 집주인의 대리인, 부동산중개사, 새로운 매수인, 나. 이렇게 4자가 모여서야 내 짐을 뺀 지 4시간 만에 그 상처에 대한 보상을 협의할 수 있었고, 첫 사랑과 같던 그 아파트 단지를 비로소 나올 수 있었다.
글=유형진 (시인),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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