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27 길해연·배우)
"네 소원은 뭐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자판에 머리를 처박고 킬킬 웃어댔다.
"왜요? 엄마가 이뤄주시려고요?" "내가 네 소원 들어달라 기도해 주려고."
평생 처음 교회라는 곳을 다니게 된 어머니는 요사이 기도의 재미에 푹 빠져 계신다.
주무시기 전에도 중얼중얼 매일 기도를 하시는데 친한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식사 때마다 "아이고 하나님! 먹기 전엔 자꾸 하나님 생각을 깜박해요.
음식이 입에 들어가고 나서야 하나님 생각이 나네요. 죄송합니다"로 대신한다.
두 달이 넘도록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 나이 많은 초보 신자는 뭘 믿고 소원을 대신 빌어주겠다 호기를 부리시는 걸까.
"엄마, 하나님한테 뭐 자꾸 해달라고 조르지 마세요. 이 사람 저 사람 해달라는 게 많으니 얼마나 머리가 아프시겠어요."
교회도 다니지 않는 내가 아는 체를 했더니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긴… 내가 봐도 다들 염치없게 하나님께 바라는 게 많긴 해.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건강하게 해 달라. 근데 말이야…."
한참을 뜸 들이던 어머니가 힐끗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한껏 낮은 소리로 말을 이으셨다.
아마도 하나님이 안 들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당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춘 것이리라.
하나님이 우리 집 지붕 위에 앉아 계신 것도 아닐 텐데 덩달아 나까지 숨을 죽이고 어머니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난 처음 하나님께 부탁하는 건데 들어주시지 않을까? 네 소원 말이야."
어머니의 말간 얼굴을 보다 어느 사이 나도 모르게 덥석 어머니 손을 잡았다.
"아이고! 만날 가진 거 없어 속상하다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던 우리 엄마, 이제 아주 든든한 후원자가 생기셨네.
엄마 걱정 마세요. 내 소원은 이미 이뤄졌어요. 늘 근심과 걱정으로 그늘져 있던 엄마 얼굴에서 이제 평안과 안식이 느껴져요.
그걸로 다 됐어요. 엄마의 막강한 후원자가 기도를 이미 들어주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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