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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그 작품 그 도시] '욘사마의 추억' 찾은 암 투병 日 할머니, 남이섬을 걷기 시작했다

바람아님 2017. 1. 4. 23:38
조선일보 : 2015.09.26 03:00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남이섬

어둠에 잠긴 춘천 남이섬 메타세쿼이아 길 위를 한 여행객이 걷고 있다
어둠에 잠긴 춘천 남이섬 메타세쿼이아 길 위를 한 여행객이 걷고 있다. 사노 요코의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는 저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쓴 일종의 생활 기록서다. 시한부 암 선고를 받은 사노 요코는 미처 다 쓰지 못하고 메말라버렸던 감정을 한류 드라마를 보고 다시 채웠다고 고백한다. 그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남이섬을 찾아와 소녀처럼 기뻐하기도 한다. 죽음을 앞두고도 인생을 즐기는 사노 요코의 기록은 읽는 이들의 마음까지 소소하게 위로해준다.
/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암은 좋은 병이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병문안 오는 사람들이 멜론 같은 걸 사온다. 나는 또 굴뚝이 되어 있다…. 제아무리 애연가라도 암에 걸리면 담배를 끊는다지, 흥, 목숨이 그렇게 아까운가?"

사노 요코의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를 읽다가 '못된 할머니'로 늙는 건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 괴팍해지는 걸까, 아니면 비로소 '남'에게 보여지는 삶이 아닌, 자기 욕망에 솔직해지는 걸까. 암에 걸렸는데도 담배를 끊지 않고, 암 환자가 된 후 '겨울연가' 같은 한류 드라마에 빠진 일본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다가, 나는 도리어 그녀의 매력에 빠졌다.

꽤 오래전, 영화 담당 기자 시절 배용준이 주연했던 '외출'이란 영화가 개봉했었다. 기자 시사회가 있던 강남 코엑스까지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 극장 입구로 몰려든 '일본 아줌마들' 때문에 그야말로 봉두난발로 압사당할 뻔한 무서운 경험이 있다. 물론 영화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한국 아줌마들에 비해) 꽤 얌전하다고만 믿었던 일본 아줌마들의 '집단 광기'를 목격한 후, 나는 대체 이들의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대체 배용준의 무엇이 그녀들을 뒤흔든 것일까. '노망'이라고 말하기엔 사회학적 분석이 시급했지만, 내 마음을 끈 진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는 게 뭐라고'를 읽다가 조금 의문이 풀렸다.

"나는 일본 아줌마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선전에 휘둘린 것도 아니고 잘난 평론가들의 꼬임에 넘어간 것도 아니다. 아줌마들은 스스로 한국 드라마를 발견했고, 땅속 마그마처럼 쓰나미처럼 우르르 몰려들어 한류를 띄웠다. 그러고는 창피고 체면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흠뻑 빠져서 일본을 바꾸어 놓았다. … 한국 드라마의 남자는 일본 남자라면 부끄러워할 만한 일을 태연하게 당당하게 해치운다. 장미꽃으로 하트를 그리고,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서도 이름을 부르고, 눈이 먼 여자를 위해 목숨을 끊어 자신의 각막을 이식한다."

참고로 사노 요코는 '보통의 아줌마'가 아니라 일본의 대표적인 삽화가로, 역시 일본의 대표 시인 '다니카와 타로'는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었다(그녀는 두 번 이혼했다). 욘사마에게 반한 건 그녀뿐이 아니었다. 교양 있다고 소문난 한 출판사 편집자와 함께 그녀가 한국의 남이섬에 달려가 '욘사마의 추억'을 찾아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 이야기를 읽다가, 책장을 덮고 웃었다. 교양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그 편집자가 "이래 봬도 제가 남이섬 주인의 친구와 친구예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는 장면이 어쩐지 주책맞고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아줌마는 자각이 없다. 미처 다 쓰지 못한 감정이 있던 자리가 어느새 메말라버렸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야 그 빈자리에 감정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한국 드라마를 몰랐다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브라운관 속, 새빨간 거짓말에 이렇게 마음이 충족될 줄 몰랐다. 속아도 남는 장사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으며 살아온 그녀는 '나는 일곱 살 때 이미 아줌마'였다는 말을 서슴없이 진술한다. 오직 인텔리의 길만 걸어온 아버지가 넝마를 잘라 만든 샌들을 거리에 늘어놓고 어린 그녀에게 "네가 팔아라!"고 말하고 뒤로 물러선 순간, 자신은 이미 아줌마가 되어버렸단 얘기였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아줌마란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삶의 '조건'이었다. 밥을 짓고, 잠을 자고, 몸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어찌 됐든 삶은 흘러간다는 걸 깨달은 어른의 이야기 말이다.

암 진단 후 사노 요코는 자신에게 남은 인생이 2년 정도라는 걸 알아낸다. 그녀는 '병원'에서 환자로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일상을 영위하며 죽기로 결심하고, 항암제와 인위적인 연명술을 거부한다. 그녀가 의사에게 원하는 건 진통제 투여뿐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그녀가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재규어를 사는 장면이다. 마치 수퍼마켓에서 좋아하는 초콜릿을 한 봉지 사는 기분으로!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던 바로 그 '재규어'를 타면서, 그녀는 자신이 나이 일흔에 죽는 게 꿈이었다는 걸 기억해낸다. "신은 존재한다. 나는 틀림없이 착한 아이였던 것이다!" 물론 산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재규어는 주차 미숙으로 여기저기에 긁히고, 줄기찬 새똥의 공격으로 '똥차'가 되어버리고 말지만.

내게 늘그막에 찾아오는 암은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미국에 사는 언니였다. 그녀는 평생 간호사로 여러 나라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했다. 언니는 길을 걷거나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느닷없이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는 '뇌혈관 질환'과 다르게 '암'은 3개월 혹은 1년처럼 인생을 정리할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준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암은 착한 병이라는 것이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하지만 나로선 상상이 되지 않는 경지의 이야기였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늘 죽음을 받아들이는 노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사는 게 뭐라고―사노 요코 에세이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전철을 타고 둘러보면 젊고 예쁜 여자 옆에는 반드시 할아버지가 서 있다. 저도 모르게 이끌려 가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다가, 눈을 번뜩이며 지하철 안의 할아버지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젊은 미남한테 이끌려가서는 안 된다. 가방을 고쳐 잡거나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앞에 서야 한다. 앉기 위해서다. 화사한 마음보다는 실용을 택한다!" 화사한 마음보다는 실용! 이건 내게 하는 말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 말이 내겐 위안처럼 들린다는 걸 알았다. 평생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거나, 나이가 들어서도 연애를 해야 한다거나, 늙으면 소식하고 운동을 해야 동안을 유지한다거나 하는 훌륭한 말이 아니라 좋았다. 그 말이 내겐 따뜻한 밥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할아버지들은 그녀의 말처럼 내 옆이 아니라, 젊고 예쁜 여자 옆에만 서 있지 않은가! 정말이지 놀라운 통찰력이다.

백영옥·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