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품 그 도시] 에세이 '당신을 위해 지은 집'―안동
N으로부터 영국인 남자 친구와 안동의 고택, 그리고 맘모스 제과점 사진을 받던 날, 안동에 있었다. 몇 년 만이었다. 안동의 댐 수몰 지구에 있던 한옥을 복구한 '구름에'라는 시적인 이름의 고택 호텔에 머물렀다. 방에는 안동의 바느질 장인이 삯바느질했다는 이불이 차곡차곡 개켜져 있었다. 만져보니 풀을 먹여서인지 버석버석했다. 잘 때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이불을 펴고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픈 외할머니가 생각나서였다. 얼굴을 이불에 파묻으니 여리고 마른 풀 냄새가 났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그녀는 가족을 맞을 생각에 수선스럽게 홑청을 다 뜯어 새로 이불을 지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수고로움인지 모를 나이인데도, 방바닥에 높이 쌓인 이불과 베개를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몇 번을 수선한 커다란 모기장을 치고, 마당엔 모깃불을 펴놓고, 손녀들이 무서워할까 봐 살짝 불을 켜놓은 채로, 강아지처럼 꼬물거리는 어린 것들의 이마에 땀이 맺힐세라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덜덜덜,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는데도.
할머니는 충청도 분이라 말이 참 느릿느릿했는데, 가끔 귀신 얘기라도 하면 말과 말 사이의 긴 호흡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지은 이불 위에 누우면 기분이 이상했다. 그때, 내 뺨과 손, 발등, 온몸에 와 닿던 서걱서걱, 사각사각한 이불과 베개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이불에서 자고 일어나면 어쩐지 푹 자고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은 한번 몸에 새겨지면 그것을 일깨우는 무엇과 접하는 순간 되살아난다. 뒤집어쓴 이불 속에선 30년 전, 나의 할머니 냄새가 났다.
한옥을 그대로 복원한 상태라 방도 좁았다. 부부든, 친구든, 연인이든 옆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국의 호텔에 도착하면, 밤에 꼭 텔레비전을 켜놓는 버릇이 있는데, 고택 호텔의 방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가족과 함께 오면 할 게 없어서, 서로 하지 못한 얘기라도 해야 할 만큼 밤이 길어졌다. 길어진 밤이 좋아, 꾸벅꾸벅 졸면서 책을 읽었다. 문을 열어 놓았더니 바람이 불었는데, 워낙 주변이 조용해서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거나, 앞마당의 모래를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다 들렸다. 아침에는 조금 늦게 맞춰 놓은 스마트폰 알람이 아니라 유난한 새소리 때문에 일찍 깼다. 눈을 떴을 때 한옥이라 밖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종이 위로 낭창낭창 움직이는 햇빛의 모양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꼭 햇볕이 찍어놓은 발자국처럼 보였다.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유리창이 아니라, 직접 이불 밖으로 나와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함성호의 '당신을 위해 지은 집'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바깥의 풍경이 항상 존재할 때 그 풍경은 일상이 되어 나를 제대로 환기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문을 젖히고 바깥을 바라볼 때 풍경은 늘 새로운 풍경이 된다. 거기에는 내가 골몰하던 나의 문제가 어느덧 내 안을 떠나 나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그는 자신이 한옥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원하지 않아도 풍경이 수시로 눈치채이는 유리창보다는 다른 일에 골몰하다가 정말 나의 바깥을 보고 싶을 때 활짝 열어젖히고 풍경을 바라보는 창호지 문이 훨씬 새삼스러운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창문 자체의 기능으로 보면 유리창이 창호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풍경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풍경을 보고자 하는 나의 의지로 볼 때는 창호지 창이 훨씬 적극적이다."
안방에 앉아 앞마당을 바라보았다. 소박했다. 정갈하다고 말하는 게 한결 정확할 것 같다. 한옥의 마당은 엄격한 의미의 서양식 정원과 다르다. 대부분의 마당이 '휑하게' 비어 있기 때문이다. 마당 정중앙에 꽃을 심는 사대부는 없었다. 그 이유를 내게 알려준 사람은 사진가 윤광준 선생인데, 그의 말에 따르면 조선의 마당은 서양식 정원처럼 '감상의 공간'이 아니라 '노동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한옥 마당은 수확한 곡식을 탈곡하거나, 예식을 치르거나, 누군가를 위해 잔치를 벌이는 공간이었다. 나는 함성호 책을 읽다가 또 다른 사실 하나도 알게 되었다.
"우리 옛집에는 항상 긴 처마가 드리워져 있는데 이 처마는 여름에는 햇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겨울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낮아지므로 햇빛을 집 안으로 깊이 끌어들이게 계획되었다. 그래서 옛집의 처마는 깊다. 깊은 만큼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지는 여름철에는 자칫 집 안이 어두울 수가 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마당은 깨끗하게 비워둔다. 햇빛이 마당에 반사되어 집 안을 밝히기 때문이다."
전구 대신 마당 안의 반사된 햇빛으로 조금씩 환해지는 집. 한옥이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계획된 집이란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풍류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시간과 공간'이 있다. 시간은 우리를 천천히 변하게 한다. 하지만 공간은 빨리 사람을 변화시키는 드라마틱한 측면이 있다. 그것이 그토록 우리가 먼 곳의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가 아닐까. 당장 신호등 위치와 자동차 운전석 위치만 바뀌어도, 우리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잡이의 세계를, 입식 생활자라면 좌식 생활인의 기묘한 세계를 감각한다. 고전적인 인도인들처럼 손가락을 이용해 밥을 먹다 보면 손가락에 닿은 혀끝의 감촉 때문에, 자신의 손끝이 얼마나 예민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처럼.
사실 한옥의 가장 놀라운 점은 사라져가는 감각의 복구에 있다. 가령 앞과 뒤가 뻥 뚫려 있는 한옥 마루에선 바람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오래된 나무 냄새 때문에 코가 예민해졌다. 의자가 아닌 곳에 앉게 되면 별 수 없이 척추를 곧게 펴게 되는데, 그러자니 평소와 달리 내 몸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시각 중심적인' 세계에 편향돼 살고 있다. 꽃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그것에 다가가 냄새를 맡고 꽃잎을 만져볼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대가 사라진 공간 안에만 있어도 많은 것이 바뀐다. 나는 당장, 밖에 있던 앉은뱅이 책상을 옮겨와 내 침실을 거실로 만들었다. 안방에서 보는 바깥의 풍경이 근사해서였다. 침실이며, 거실이며, 차실(茶室)인 그곳에서 고즈넉하게 차 한잔을 마셨다. 형태를 끊임없이 바꾸는 구름을 보며,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참으로 마술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마당의 까끌대는 모래를 쓸며 바람이 불어왔다. 서울에서 못다 한 말 때문에 꽉 막혀 있던 귀가 시원해졌다.
●당신을 위해 지은 집―시인 함성호의 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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