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5.11.28 03:39
[그 작품 그 도시] 에세이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제주
'꿈속의 사랑'이라는 노래를 틀어놓은 누군가의 방에서 온종일 글을 썼다. 처음엔 목소리 주인공이 탕웨이인 줄 모르고 들었는데, 정말이지 좋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말았다. 그녀가 부른 '꿈속의 사랑'은 김태용 감독이 만든 단편 영화 '그녀의 전설' OST였다.
영화 제목이 '그녀의 전설'이 된 까닭은 해녀인 '그녀'가 어느 날 물질을 나가서 실종되듯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약사로 일하던 해녀의 딸은 상심한 채 제주도 집으로 내려왔다가 곰이 된 엄마와 꿈처럼 재회한다. 이 영화에서 곰이 된 엄마는 끊임없이 먹고 해녀들과 춤추고 꽃밭에서 손주와 노닐며 행복해 보인다. 판타지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어쩐지 나는 곰이 된 해녀 엄마가 추는 춤이 귀엽지만(!) 서글펐다. 특히 곰 엄마가 "미역 같은 거 말고 기름진 음식을 달라"고 딸에게 마구 떼를 쓸 때.
"그녀들은 오로지 자신들 노동의 힘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만큼 21세기의 어느 여성들도 못 따라올 만큼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면서도 19세기 가부장제와 남아 선호 사상에 얽매여 있었다. 또한 자영업자처럼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 일에는 군말 없이 똘똘 뭉치는 면모를 보였다. 자기들끼리는 소녀들처럼 웃고 떠들다가 카메라만 들이대면 삿대질을 하면서 화를 냈다. 지나가는 올레꾼에게 밀감을 거저 건네줄 만큼 인심이 좋은데도 해안에 밀려온 소라 하나라도 그냥 가져가면 목청을 한껏 돋웠다. 잠수병으로 이명과 두통을 호소하면서도 그 또래 아주망이나 할망들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실로 모순적 존재의 여신들이었다."
영화 제목이 '그녀의 전설'이 된 까닭은 해녀인 '그녀'가 어느 날 물질을 나가서 실종되듯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약사로 일하던 해녀의 딸은 상심한 채 제주도 집으로 내려왔다가 곰이 된 엄마와 꿈처럼 재회한다. 이 영화에서 곰이 된 엄마는 끊임없이 먹고 해녀들과 춤추고 꽃밭에서 손주와 노닐며 행복해 보인다. 판타지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어쩐지 나는 곰이 된 해녀 엄마가 추는 춤이 귀엽지만(!) 서글펐다. 특히 곰 엄마가 "미역 같은 거 말고 기름진 음식을 달라"고 딸에게 마구 떼를 쓸 때.
"그녀들은 오로지 자신들 노동의 힘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만큼 21세기의 어느 여성들도 못 따라올 만큼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면서도 19세기 가부장제와 남아 선호 사상에 얽매여 있었다. 또한 자영업자처럼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 일에는 군말 없이 똘똘 뭉치는 면모를 보였다. 자기들끼리는 소녀들처럼 웃고 떠들다가 카메라만 들이대면 삿대질을 하면서 화를 냈다. 지나가는 올레꾼에게 밀감을 거저 건네줄 만큼 인심이 좋은데도 해안에 밀려온 소라 하나라도 그냥 가져가면 목청을 한껏 돋웠다. 잠수병으로 이명과 두통을 호소하면서도 그 또래 아주망이나 할망들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실로 모순적 존재의 여신들이었다."
며칠 간격으로 해녀와 관련된 영화와 책을 읽었다. 서명숙의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은 제주 해녀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열혈 기자였고 제주 올레 이사장이기도 한 저자는 제주도 출신이라 곳곳에서 외국어처럼 튀어나오는 제주 말을 자기 책에 있는 힘껏 담아냈다. 서울 토박이인 내겐 낯선 말이었지만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살다 보면 다 살게 된다)' 같은 문장은 직접 소리 내어 읽었다. 어쩐지 미역처럼 보드라운 말의 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레가 유명해지기 전, 그곳을 걸었다. 차를 빌려 중문단지나 여미지 식물원 같은 관광지에만 머물렀지, 제주를 걸어서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탓에, 걸으면서 보는 제주는 내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올레를 걷다가 종종 검은색 고무 옷을 입은 저 해녀 할망들과도 자주 마주쳤다. 멀리서 보면 물개들이 줄지어 땅 위를 뒤뚱대며 걷는 것 같아 내 눈엔 귀엽게만 보였다. 그때는 할망들이 들고 있던 둥그런 것이 태왁이라는 것조차 모를 때였다.
이 책을 읽다가 해녀에 대한 꽤 오래된 몇 가지 의문이 풀리기도 했다. 어째서 제주에는 해녀만 있는 걸까? 이렇게 힘이 든 육체노동이라면 해남(海男) 쪽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먼 옛적부터 제주에는 깊은 바닷속 전복을 따는 건 남자들인 '포작'의 몫이었고, 가까운 바다에서 미역 등 해조류를 채취하는 건 여자들인 '잠녀'의 몫이었다. 그 역할이 완전히 바뀐 것은 조정과 육지에서 파견된 탐관오리들 때문이었으며 사달은 전복이었다. … 바쳐야 할 전복의 수량을 채우지 못한 포작들은 관아로 끌려가 곤장을 맞거나 흩어져서 떠돌다가 물에 빠져 죽어서 열 중 두셋만 살아남았다. … 포작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전복 잡는 일은 점점 여자들 몫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조선 조정과 지방 탐관오리의 횡포가 제주의 잠수 일을 여자 몫으로 만든 셈이다."
올레가 유명해지기 전, 그곳을 걸었다. 차를 빌려 중문단지나 여미지 식물원 같은 관광지에만 머물렀지, 제주를 걸어서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탓에, 걸으면서 보는 제주는 내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올레를 걷다가 종종 검은색 고무 옷을 입은 저 해녀 할망들과도 자주 마주쳤다. 멀리서 보면 물개들이 줄지어 땅 위를 뒤뚱대며 걷는 것 같아 내 눈엔 귀엽게만 보였다. 그때는 할망들이 들고 있던 둥그런 것이 태왁이라는 것조차 모를 때였다.
이 책을 읽다가 해녀에 대한 꽤 오래된 몇 가지 의문이 풀리기도 했다. 어째서 제주에는 해녀만 있는 걸까? 이렇게 힘이 든 육체노동이라면 해남(海男) 쪽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먼 옛적부터 제주에는 깊은 바닷속 전복을 따는 건 남자들인 '포작'의 몫이었고, 가까운 바다에서 미역 등 해조류를 채취하는 건 여자들인 '잠녀'의 몫이었다. 그 역할이 완전히 바뀐 것은 조정과 육지에서 파견된 탐관오리들 때문이었으며 사달은 전복이었다. … 바쳐야 할 전복의 수량을 채우지 못한 포작들은 관아로 끌려가 곤장을 맞거나 흩어져서 떠돌다가 물에 빠져 죽어서 열 중 두셋만 살아남았다. … 포작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전복 잡는 일은 점점 여자들 몫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조선 조정과 지방 탐관오리의 횡포가 제주의 잠수 일을 여자 몫으로 만든 셈이다."
그러니까 해남이 없었던 게 아니라 해남이 사라진 것이었다! 해녀의 탄생이 역사상 가장 가혹한 수탈의 결과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해녀는 들여다볼수록 신비로웠다. 가파도의 71세 해녀가 '물속에선 입으로 내쉬면 물을 먹게 되니까, 한 번 들어가면 15번에서 16번, 가슴으로만 숨을 쉰다'고 말할 때, 나는 숨이 넘어가는 고통을 참으며 물에서 쉬는 숨이 어떤 숨일까 상상했다.
출장 해녀, 제주 4·3 항쟁, 해녀 학교와 해녀의 전통을 잇겠다고 뭍에서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 이야기….
특히 제주 해녀 학교에 관심이 많았던 내겐 제주에 널린 해양 쓰레기를 시간이 날 때마다 걷어 목걸이나 귀고리 등 다양한 생활 예술품으로 탈바꿈시켜, 제주 곳곳 난장을 돌아다니며 작품으로 알린 해녀 학교 출신 예술가들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하지만 가장 뭉클했던 것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현실과는 다른 그녀들만의 자매애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신참이나 할망 해녀들이 해산물을 잡지 못해 허탕 친 날이면, 다른 해녀들이 잡아 온 소라며 전복 따위를 하나씩 넣어주며 빈 망사리를 한가득 채워준다는 이야기였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선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데 해녀들에겐 그것이 현실의 삶이라고 하니, 절로 그 공동체가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남편과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을 짊어지고 살던 북촌리 해녀 할망들의 장수 비결이 자매애로 똘똘 뭉친 공동체에 있다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바람난 남편, 사고로 죽은 내 아이도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되면 세월과 함께 어느새 아픔도 바람에 천천히 씻겨나간다. 그러니까 그녀들이 옳다.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
책을 읽다가 숨을 한번 참아보았다. 39초. 금세 머리가 멍해져 숨을 한가득 내뱉었다. 이곳이 물이었다면 나는 그대로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문득 '산다'는 말이 '버틴다'는 말과 한 몸처럼 느껴져, 살고 싶어지지 않을 때 무작정 숨을 참아보기로 결심했다. 참았던 숨을 내뱉는 순간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산소를, 삶을 원했는지 내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였다.
해녀 할망들의 말이 맞다. 내 몸 움직여 밥 지어 먹고 잠만 잘 수 있으면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서명숙 에세이집
백영옥·소설가출장 해녀, 제주 4·3 항쟁, 해녀 학교와 해녀의 전통을 잇겠다고 뭍에서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 이야기….
특히 제주 해녀 학교에 관심이 많았던 내겐 제주에 널린 해양 쓰레기를 시간이 날 때마다 걷어 목걸이나 귀고리 등 다양한 생활 예술품으로 탈바꿈시켜, 제주 곳곳 난장을 돌아다니며 작품으로 알린 해녀 학교 출신 예술가들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하지만 가장 뭉클했던 것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현실과는 다른 그녀들만의 자매애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신참이나 할망 해녀들이 해산물을 잡지 못해 허탕 친 날이면, 다른 해녀들이 잡아 온 소라며 전복 따위를 하나씩 넣어주며 빈 망사리를 한가득 채워준다는 이야기였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선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데 해녀들에겐 그것이 현실의 삶이라고 하니, 절로 그 공동체가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남편과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을 짊어지고 살던 북촌리 해녀 할망들의 장수 비결이 자매애로 똘똘 뭉친 공동체에 있다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바람난 남편, 사고로 죽은 내 아이도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되면 세월과 함께 어느새 아픔도 바람에 천천히 씻겨나간다. 그러니까 그녀들이 옳다.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
책을 읽다가 숨을 한번 참아보았다. 39초. 금세 머리가 멍해져 숨을 한가득 내뱉었다. 이곳이 물이었다면 나는 그대로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문득 '산다'는 말이 '버틴다'는 말과 한 몸처럼 느껴져, 살고 싶어지지 않을 때 무작정 숨을 참아보기로 결심했다. 참았던 숨을 내뱉는 순간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산소를, 삶을 원했는지 내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였다.
해녀 할망들의 말이 맞다. 내 몸 움직여 밥 지어 먹고 잠만 잘 수 있으면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서명숙 에세이집
'人文,社會科學 > 作品속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Why] [그 작품 그 도시] 답장 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함께한 시간 기억하기에 (0) | 2017.01.09 |
---|---|
[김창완의 독서일기]엄마의 마지막 2년… 영원으로 남은 순간들 (0) | 2017.01.08 |
[김주원의 독서일기]어느 공간 어느 순간에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깨달음 (0) | 2017.01.05 |
[Why] [그 작품 그 도시] '욘사마의 추억' 찾은 암 투병 日 할머니, 남이섬을 걷기 시작했다 (0) | 2017.01.04 |
[김경주의 독서일기]평생 단 한번도 미치지 않은 인생은 얼마나 따분할까 (0) | 2017.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