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 2016.12.19 09:37:58
숨 가쁜 경제, 민주적 결정 속도에 맞춰야
우리는 시계로 시간을 잰다. 시계추의 움직임이나 원자 분열 같은 규칙적인 사건을 통해 어떤 사건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누구나 사회적인 시간에 맞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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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시간은 타협의 산물이다. 예전에는 지역마다 다른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철도가 발달하면서 시간의 통일이 이뤄졌다. 공통의 시간이 없으면 열차 운행은 불가능하다.
산업혁명 이후 시계는 노동자의 숨통을 죄는 통제의 상징이 됐다. 공장 노동자는 자신의 리듬을 버리고 증기기관의 리듬에 맞춰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에게 시간은 억압적이다. 독일 철학 에세이스트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지루하고도 유쾌한 시간의 철학(Zeit)’은 무엇이 우리를 서두르게 만드는지, 무엇이 우리의 시간을 훔쳐 가는지 성찰하게 해준다. ▶현대인은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계획 세워 정치와 경제 사이엔 ‘속도의 불일치’ 문제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지루해할 줄 아는 존재다. 그래서 오락을 해야 한다. 물론 죽어라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지루함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권력자와 부자들뿐이라고 했다. 현대인은 대개 시간에 쫓긴다. 시간이 부족한 건 인간과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안다. 기독교는 인간이 구원받으려 노력하는데 시간은 늘 부족하다고 가르쳤다. 장로교는 시간 낭비를 큰 죄악으로 봤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시간 낭비에 대한 혐오가 근대 자본주의 검약 정신의 바탕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또한 실현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늘 시간은 아껴야 하는 것이다. 자프란스키는 “변화를 가속화하려는 이들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내세우며 역사를 피로 물들였다”고 말한다. 프랑스혁명 때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로, 러시아혁명 때 레닌은 총살특공대로 역사의 시간을 앞당기려 했다. 오늘날 생산의 변혁은 현기증 날 정도다. 생산자는 빠르게 시대에 뒤떨어지며 상품은 더 빠르게 쓸모를 잃는다. 기술과 지식은 갈수록 빨리 노화한다. 땀 흘려 쌓은 경험은 급속히 가치를 잃어버린다. 우리는 끊임없이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통, 통신, 생산, 소비가 가속화할수록 개인에게 더 유연해지라는 압력은 커진다. 물론 시간 자체는 가속화하지 않는다. 갈수록 빨라지는 건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다. 철도가 처음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시속 30㎞에도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철마를 타면 장기는 제 기능을 못하고 두개골이 짓눌리며 영혼은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무서워했다. 오늘날 정치와 경제 사이에는 속도의 불일치 문제가 있다. 경제는 혁명적인 기계의 박자에 맞춰 숨 가쁘게 돌아가는 데 비해 민주적 절차를 지켜야 하는 정치적 결정은 굼뜨기만 하다. 중대한 결정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려야 한다. 그러나 시간은 늘 촉박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경제를 민주적 결정의 고유한 시간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무거운 질량 가까이서 시간은 확연히 더 느리게 흐른다. 누군가가 다른 이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면 이 사람의 시간은 더 느리게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쏜살같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더 기를 쓰고 달려야 할까. 호주의 어떤 원주민은 먼 거리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면 몇 시간 동안 그대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려는 배려였다. 우리에게 그런 여유가 허락될까.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7호 (2016.12.14~12.20일자)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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