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엔 그도 흑사병 걸려 고생.. 伊 과학자, 기니蟲 감염이라 주장
30년 전까지도 340만명 고통받아.. 카터센터 노력.. 99% 종적 감춰
14세기 프랑스 출신의 순례자 로코(Roch)는 로마로 가는 도중 만난 흑사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로코가 흑사병에 걸렸을 때는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았다. 하지만 로코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렸다. 그때 개 한 마리가 매일 그에게 빵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빵을 물고 사라지는 개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개를 따라갔다가 로코를 발견한 덕분에 로코는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로코는 나중에 가톨릭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생전 행적에 따라 외과의사와 환자, 부당하게 기소된 사람 등의 수호성인이 됐다. 이탈리아 곳곳에 있는 그의 동상이나 그림을 보면 지팡이를 든 순례자 옆에 개 한 마리가 있는 모습이다. 로코의 왼쪽 허벅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그곳에서 마치 뱀처럼 굵은 고름이 흘러나와 생전 그가 겪은 고통을 웅변한다.
이탈리아 피사 대학의 고(古)병리학자인 라파엘 가에타 교수는 국제학술지 '감염학 저널'에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州) 바리의 미술관에 있는 로코의 그림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성당의 제단을 장식한 이 그림 역시 로코가 지팡이를 짚고 있고 옷이 풀어헤쳐진 왼쪽 허벅지에서 고름이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가에타 교수는 이 그림은 흑사병이 아니라 기생충 감염으로 인한 기니충병(Guinea worm disease)의 고통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벅지의 고름은 사실 몸길이 1m에 이르는 기생충이 피부를 뚫고 나오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기니충은 애벌레 상태로 물벼룩에 기생하다가 사람이 오염된 물을 마실 때 함께 몸으로 들어간다. 1년 뒤 성충이 피부를 뚫고 나오는데, 그때 환자에게 마치 피부를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준다고 한다. 환자는 고통을 줄이려고 물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기니충이 알을 물에 퍼뜨려 감염의 악순환이 다시 시작된다. 아프리카 기니 해안에서 환자가 많다고 해서 기니충병이란 이름이 붙었다.
가에타 교수는 기니충병이 오래전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에 퍼져 있었는데 중세에 로코와 같은 순례자들을 따라 유럽으로 번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기록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구약성서에서는 모세가 이끄는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했다가 생활이 더 나빠졌다고 불평을 일삼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하늘에서 벌로 '불타는 뱀(fiery serpent)'을 보냈다고 성경은 기록하는데, 바로 불타는 듯한 고통을 주는 기니충을 의미한다는 것. 기원전 1550년의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오늘날처럼 막대기로 실을 감듯 기니충을 감아 뽑아내는 치료법도 나온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3000년 된 미라에서도 석회화된 기니충이 나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정은 로코가 살았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1986년 아시아와 아프리카 21국에서 350만명 이상이 기니충에 감염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30년 만인 2016년 아프리카 4국에서 단 25건의 감염 사례만 발견됐다. 기니충병이 천연두에 이어 두 번째로 완전 박멸된 전염병이 된 것이다.
기니충이 사라진 것은 치료제가 나와서도 아니고 백신이 개발돼서도 아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세운 카터센터의 헌신 덕분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중반 주민의 3분의 2가 기니충에 감염된 아프리카 가나의 한 마을을 방문하고 나서 기니충 박멸을 센터의 목표에 추가했다. 카터 센터는 선진국에서 돈을 모아 저개발국가에 약을 대규모로 배포하는 기존의 구호 방식에서 벗어났다. 현지 주민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센터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아동기금(UNICEF), 미국질병통제센터(CDC), 그리고 현지 보건 당국과 손을 잡고 주민들에게 기니충의 생활사를 가르치는 교육부터 시작했다. 이제 주민들은 기니충에 감염된 환자가 마을의 식수원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 개가 기니충에 감염된 생선을 먹고 새로운 감염원이 되자 생선 찌꺼기를 그대로 버리지 않고 땅속 깊숙이 묻도록 교육했다. 그 결과 치료제 하나 개발되지 않았음에도 30년 만에 기니충 감염자가 99.99% 줄어든 것이다.
로코는 프랑스 몽펠리에 지방에서 장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음지(陰地)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기 위해 귀족 신분을 버리고 철저히 낮은 곳으로 갔다. 자리에서 물러나면 감옥 가기 바쁜 고관들을 보면서 로코의 정신과 카터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헌신을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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