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정부 수립 이후 가장 황당한 사태를 맞고 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탄핵으로 공석 중이고, 국론은 촛불과 태극기로 찢어진 상태다. 정치권은 대선에 빠져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안보·외교·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살얼음판의 연속이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을 전후로 전 세계가 우려하는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벼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묘한 정상회담을 한 뒤 한반도 주변에 군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 언론에선 연일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유력 대선후보들은 오불관언하듯 한다. 이미 배치하고도 남았어야 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놓고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줄곧 사드 배치에 떨떠름해하던 한 후보는 “핵 도발 계속하면 배치하겠다”고 울며 겨자 먹기 식 발언을 했다. 누가 봐도 선거를 의식한 ‘꼼수 발언’이다. 핵무기는 삼진아웃 대상이 아니다. 핵미사일 한 발에 수백만명의 목숨이 달려 있고,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다. 선제적 대비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전쟁은 안 일어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객관적인 상황들을 보면 전쟁 조짐이 커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역설이지만 전쟁을 막으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치닫던 미·소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한 것은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별들의 전쟁’ 프로젝트가 되레 전쟁을 막은 것이다. 평화 구걸이 아닌, 압도적인 힘으로 70년 이상 대립하던 세기의 체제 전쟁을 마무리했다. 왜 유력 후보들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략핵 재배치를 포함한 북핵과 빅딜할 만한 공약을 안 내거는지 모르겠다. 외려 군소 후보들의 안보 공약이 주목받는 이유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이 공군력을 늘리는 등 전쟁을 준비하는 기미가 농후한데도 영국 총리 스탠리 볼드윈은 애써 무시했다. 후임인 네빌 체임벌린은 한술 더 떠 히틀러와 회담한 후 “우리 세대에서 전쟁은 없다”고 장담했다. 윈스턴 처칠만이 온갖 야유와 멸시를 받아가며 전쟁 대비를 역설했다. 불행하게도 처칠의 예언이 적중했다. 그는 영국을 살렸다. 평화를 바라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국정 책임자들은 안보 강조론만 나오면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고 정색했다. 지금의 대선후보와 중견 국회의원 중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심지어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그럼 중국과 전쟁하자는 말이냐”고 으름장을 놨다. 국체를 보전하려면 싸울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 군사도, 경제도, 문화도 결국 나라 간의 전쟁이다. 전쟁을 이끄는 최고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전쟁을 치를 각오가 없거나 전쟁이 두려운 후보는 대선에 나서면 안 된다.
우리 민족은 고조선 이래 임진왜란, 6·25를 포함해 900여 회의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무시한 선조는 나중에 눈물을 흘렸지만 이미 국토와 백성은 왜군에 유린당한 뒤였다. 최근 일부 해독된 북한의 난수표방송과 수도권 일대에 집중 투하된 삐라를 보면 북한의 속셈이 훤히 보인다. 지령문 중에 박근혜 끌어내리기, 사드 배치 저지, 5·24 해제, 이석기 석방, 국정원 해체가 포함돼 있는 것을 어찌 볼 것인가.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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