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18 류근일 언론인)
'안철수 현상' 등판에 보수 성향 표 옮겨가니 정체성 묻지 않을 수 없어
'경제는 온건 진보이되 안보는 보수와 협치를' 그래야 文과 겨룰 수 있어
대통령 선거는 어떤 노선의 인물을 골라내느냐,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뽑아내느냐 하는 선별이다.
그러려면 후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고 일관성 있게 부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유권자들이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정치 지형엔 그동안 두 정체성이 등장해 왔다.
자유주의-보수주의 정체성과 이른바 운동권 정체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이 둘 외에 제3의 정체성, 안철수 현상이 등판했다.
시대가 요구한다면 제3의 정체성이 일어나선 안 되리란 법은 없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추세를 본다면 양당 체제만으로는 더 이상 다양한 여망을 대표하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지지하는 정당 없음'이라는 응답률이 늘고 있다.
이쪽에도 불만, 저쪽에도 불만인 유권자가 상당수 있으리란 것이다.
제3의 정체성은 그래서, 나오려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가설이다.
문제는 제3의 정체성의 콘텐츠와 실체가 뭐냐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은 이 물음에 확실하고도 완성도 높은 답을 주었다고 할 수 없다.
제3의 정체성은 '다 지은' 집이라기보다는 '짓고 있는' 집인 셈이다.
이 점은 그간 안철수 후보의 말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사드 배치, 개성공단 같은 엄중한 사항을 두고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은 몇 번씩이나 냉·온탕을 오갔다.
상황이 바뀌어 그랬다지만, 상황 이전에 '안철수의 원칙'은 없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7일 시민을 향해 두 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근래 와 그는 다시 '안보 우(右) 클릭'을 했다.
그러나 이게 선거라는 상황 변화를 의식해 한 일이라면
선거가 끝난 상황에선 또 어떻게 변한다는 것인가?
국민의당 안에도 햇볕 근본주의와 운동권 취향이 들어가 있다.
이들이 지금은 가만있지만, 대선 후엔 "그건 선거 때 이야기이고…" 하고
딴전을 피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래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안철수 위에 박지원 상왕(上王) 있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 2중대"라고도 했다.
'얼치기 좌파'란 표현도 썼다. 있을 법한 공격이었다.
안철수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듯 논란이 이는 건 최근 일부 보수 표(票)가
그쪽으로 가고 있다는 일부 여론조사 때문이다.
이 조사는 물론 항구적일 순 없다.
그러나 그의 지지율이 오르면 그건 좌(左) 쪽보다는 우 쪽 표가 이동한
효과이기가 쉽다.
그럴 경우 "안철수의 정체는 뭐냐?"고 하는 우파 유권자들의 치열한
추궁이 없을 수 없다. 안철수는 누구인가? 제3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제3의 정체성은 "경제는 진보라도 안보는 보수"라던 안철수의 초기 발언 그대로라야 한다.
이 말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추구하더라도 그것은 1948년 이래의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에 대한 확고한 긍정에
기초한 것이라야 한다는 뜻이다.
1980년대 이래 우리 사회엔 이에 배치되는 전체주의적 좌익이 등장했다.
진보 아닌 퇴보의 길이었다.
바람직한 제3의 길은 그래서 자유민주 체제, 한·미 동맹, 대북 억지(抑止), 북한 인권에서만은 보수와 함께
'안보 정통주의'를 초당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안철수 후보는 이럴 용의가 있나?
그는 처음엔 그럴 듯 말해 놓고 나중엔 텃밭을 의식해 '경제도 진보, 안보도 진보'로 돌아섰다.
이러려면 왜 굳이 분당(分黨)했나?
분당 명분에 맞으려면 그는 이제라도 이랬다저랬다 그만하고 '경제는 온건 진보, 안보는 애국적 협치(協治)' 체제로 정해야
한다. 우파의 '안보 정통주의' 몫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그가 문재인 후보와 차별화하고 겨룰 수 있을까?
복지-분배에선 기업 활성화를 전제했던 왕년의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수의 제3의 길을 참작할 만하다.
국민 세금을 공짜로 나누어주겠다는 선동적 포퓰리즘엔 단호히 노(no)라고 말해야 한다.
정경 유착, 갑(甲)질 횡포는 없애야 한다. 그러나 기업 경영에 운동꾼, 정치 노조, 국가가 치고 들어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태는 구(舊)좌파의 길이지 제3의 길이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관훈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편 가르기 시대는 지났다. 국민에게 골고루 지지받는 대통령이라야 한다."
그러려면 안철수 후보는 운동권에 대한 쓸데없는 부채 의식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 사회 인텔리 직종엔 그런 의식을 가진 소(小)부르주아가 꽤 있다.
"적(敵)은 오른쪽에만 있고, 왼쪽엔 없다"는 허위 의식이다. 한반도 폭정은 그러나 오른쪽 아닌 왼쪽 극단에 있다.
'제3'이 되려면 그런 미신부터 털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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