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트럼프·시진핑의 '브로맨스'와 한반도의 운명

바람아님 2017. 4. 17. 23:36
머니투데이 2017.04.17. 08:45

[송정렬의 Echo]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 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별장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는 함께 엄청난 ‘케미스트리’(Chemistry)를 가졌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한다. 나는 그를 많이 좋아한다.”

이 정도면 누군가의 뜨거운 사랑고백처럼 들린다. 과연 등장인물들은 누굴까. 고백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 대상은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트럼프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직접 털어놓은 말들이다.


아무리 트럼프가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 해도 이런 변신은 놀랍다. 중국은 트럼프가 대선기간 동안 ‘미국 우선주의’의 최대 적으로 꼽아 '융단폭언'(?)을 퍼부은 대상이다. 불과 100일 전만 해도 그에게 중국은 환율조작의 꼼수까지 동원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돈을 빼내가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24시간도 안되는 미·중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시진핑과의 브로맨스를 발전시키며 중국에 대한 시각까지 180도 바꿨다. 왜일까.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미국은 칼빈슨 항모전단을 한반도로 이동하는 등 전략자원들을 한반도 주변으로 속속 집결시키며 북한에 여차하면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가 또 한 명의 브로맨스 대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갈등도 마다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시리아 공습을 감행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가 ‘혹시나’하는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미국의 고강도 위협에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보란 듯이 또다시 도발을 감행했다. 지난 15일 태양절 군사퍼레이드에서 개량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전세계에 뽐낸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16일 새벽 미사일을 발사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발사체가 발사 직후 폭발하면서 미국은 아직까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사일 발사 실패로 체면을 구긴 북한이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은 남아 있어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또 다른 고비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직접 북한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필요하면 군사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계속 엄포를 놓아왔다. 물론 ‘중국이 돕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고서였다.

트럼프 입장에서 북핵문제 해결의 제1 옵션은 현재로선 북한에 정치·경제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 카드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공한 사업가 출신에 베스트셀러 ‘협상의 기술’ 저자답게 트럼프는 더 나아가 통 크게 자신의 대선공약까지 내팽개치면서 ‘환율조작국 미지정’이라는 선물까지 시진핑에게 안겼다. 결국 북핵문제 해결의 ‘공’을 중국에 넘긴 셈이다.

문제는 중국이 계속 강력한 대북한 제재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북한 역시 핵개발 의지를 꺾지 않고 지속적으로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트럼프와 시진핑의 브로맨스엔 균열이 생기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중국도 북한은 어쩔 수 없구나’라고 판단하고 중국 카드를 접을 경우 한반도의 위기는 ‘설’이 아니라 현실로 대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와 미국 입장에서 북한 핵문제는 미사일 몇 방으로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 시리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미국이 가장 꺼리는 핵보유국 북한은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다. 또한 북한의 핵기술 발전속도를 고려하면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에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군사적 옵션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북한의 보복 공격을 발생시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과 개입 등 사태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를 예단할 수 없다. 트럼프가 뜨거운 애정공세에 선물까지 안기며 시진핑과 밀당의 강도를 높여가는 이유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전 세계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온통 대선정국에 빠져 있다. 아무리 분단 64년간 지정학적 리스크에 이골이 났다지만 트럼프, 김정은, 미·중, 북·중 관계 등 다양한 변수가 포함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작금의 한반도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미우나 고우나 지금으로선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을 이끄는 스트롱맨인 트럼프와 시진핑의 브로맨스에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위기탈출의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게 서글픈 우리의 운명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뉴욕=송정렬 특파원 songjr@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