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 가라사대
금·은·흙은 출신 계급의 은유다. 영어에도 동일한 표현이 있으니 한국 고유 정서는 아니다. 은유는 쇠를 놓쳤다. 한국적 그림은 바로 쇠에 있기 때문이다.
‘한민족’하면 우랄알타이·단군신화·단일민족을 떠올린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증할 수 없기에 신화다. 하지만 최근 발굴 성과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7700년 전 시베리아의 ‘악마문’이라는 동굴에서 신석기유물과 가장 오래된 직물을 발견했다. 일대는 고대 고구려·동부여·북옥저 지역이었다. 연구는 여기 살던 고대인들의 유전자가 현대 한국인과 유사하다고 발표했다. 동굴의 고대인과 베트남 및 대만의 고립된 원주민 유전자를 융합해 보면 딱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유물은 우리가 단일민족이라 할 만큼 오랫동안 동일성을 유지했다고 말해준다.
핏줄뿐인가? 아니다. 문화적 동일성도 만만치 않다. 대표선수가 ‘쇠’다. 쇠에는 한반도의 문화적 특징이 배어있다. 한반도의 청동기, 철기문화는 중국보다 먼저였고 성분도 판이했다. 쇠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수저는 예전에는 놋쇠였다. 최근에는 스테인리스로 바뀌었다. 일본이나 중국은 주로 나무나 도자기였지 쇠는 아니었다. 더 독특한 특징은 생김새다. 한국만이 납작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한다. 중국과 일본 숟가락은 국을 마시는 용도라 짧고 속이 깊다. 반면 우리 것은 국보다 밥에 적합하다. 젓가락도 작은 반찬을 잡기 쉽게 납작하고 무게감도 있어 조종이 용이하다. 밥과 반찬이라는 한국문화에 최적화한 것이다.
금은 무겁고 물러서 비효율적이다. 은은 지체 높은 대갓집에서 애용했다. 독을 만나면 변색하는 특성 때문에 임금님 수저로도 유명했다. 나무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건 쇠수저였다. 오랫동안 한국인은 쇠수저로 밥을 먹고, 반찬을 집고 국을 떠마셨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렇다. 쇠수저는 한국인이 가장 애용하는 도구이자 오랜 자의식의 반영인 것이다.
금·은·흙은 좋은 은유지만 현실성과 보편성이 빠졌다. 머리로 서 있는 꼴이다. 우리는 지금껏 금은으로 밥 먹은 적 없다. 흙수저로는 식사가 불가능하다. 비현실적인 귀금속이나 허튼 도구로는 보편적 현실에 닿을 수 없다는 말이다.
‘정치가는 달을 따준다고 공약한다(Politicians promise the moon)’란 영어 속담이 있다. 금·은·흙이 바로 달이다. 오늘도 우리는 쇠수저를 든다. 한국 문화와 풍습 그리고 감성이 그렇다. 디뎌야 할 땅도 굳건히 지켜야 할 자리도 달이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가 쇠수저다.
이호영 현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연구원
서강대 종교학과 학사·석사. 런던대학교(S.O.A.S.) 박사. 동양학 전공.
'공자의 축구 양주의 골프''여자의 속사정, 남자의 겉치레' '스타워즈 파보기'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