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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보수는 왜 단일화 못 하나

바람아님 2017. 4. 25. 07:39

(조선일보 2017.04.25 김대중 고문)


보수 후보들, 승산 없는데도 "이념과 노선 다르다"며 완주 고집하고 연대도 거부

그러나 정치는 民心 얻는 일

"연대하라" 요구에 부응해 보수세력 복원 나서야


김대중 고문보수(保守)는 정녕 단일화할 수 없는 것인가? 

보수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초래해 놓고도 그 책임의 경중을 두고 네 탓, 

내 탓 해가며 갈라서서 이제는 자기들끼리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때로는 이 땅의 보수 정당은 망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보수층 국민은 나라가 좌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며 깊은 한숨과 함께 마지막으로 보수의 단일화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보수 정치에는 통합이나 연대나 단일화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런 역사도 없다. 

단일화하거나 연대만 했어도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두 번이나 졌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씨는 다 이긴 선거를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에 내줬다. 

"5·16 세력과는 손잡을 수 없다"는 논리로 거부한 JP를 DJ가 가져간 것이다. 

5년 뒤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게임에 휘말리다 보수 측은 또다시 정권을 놓쳤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014년 선거에서는 서울, 부산, 인천, 대전, 세종, 경기, 충청남·북, 경북, 제주 등 무려 10여곳에서 보수 후보가 

난립해 끝까지 대립하는 바람에 진보-좌파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0년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도 5명의 보수 후보가 난립, 결국 곽노현에게 졌다. 

좌파 후보들은 누가 조종하는지 막판에 가서 단일화하거나 후퇴해 한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훈련(?)이 돼 있는 듯한데 

보수는 저마다 자기 잘났다고 끝까지 버텨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보수 후보는 단독으로는 승산이 없음을 짐작하면서도 끝내 완주를 고집하며 

누구와의 연대나 단일화를 거부하고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측은 정당의 존재 이유가 이념과 노선에 있는 것인데 

그것을 이념-노선이 다른 정치 세력과 타협하는 것은 정치의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치는 학문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작업이다. 

국민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보고 그 다수의 지향치를 수용하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념적 기본을 버리지 않으면서 어느 범위 내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유승민 후보와의 단일화에 느긋한 입장인 것 같다. 

한국당의 의석수가 많아 보수 1당인 만큼 보수 2당인 바른정당이 숙이고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게다가 홍 후보 측은 자기들이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되는 것이 낫다며 

단일화의 역설(逆說)론을 펴고 있다.


지금 대다수 보수 유권자가 바라는 것은 좌파와 타협하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성취할 수 없으면 

큰 테두리에서 같은 이념과 노선을 지닌 다른 보수 정당과 연대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홍 후보나 유 후보가 그들의 선거 구호처럼 '나라를 구하는' 메시아로 자처하려면 먼저 보수 세력을 복원시키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들의 목표는 1차적으로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겠지만 2차적으로는 좌파의 집권을 막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 형세로는 홍 후보나 자유한국당 혼자서 하기 어려운 것이고 유 후보와 바른정당만으로는 너무나 벅찬 일이다.


특히 바른정당 내에서는 유 후보를 사퇴시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연대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강한 모양인데, 

그것이 비록 문재인의 집권을 막을 수 있는 선택이라고 해도 중도·좌파와의 연대는 그것이야말로 바른정당 노선의 일탈이다. 

아무리 원수 같은 사이라고 해도, 또 아무리 굴욕스럽더라도 우선 자유한국당과의 봉합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안철수와의 연대 모색은 그것이 무산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홍-유의 단일화가 이뤄진다 해도 문재인·안철수와의 3파전으로는 대선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그래도 보수가 합치는 것은 해볼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보수의 분열로 허탈감에 빠져 있는 보수 유권자에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잘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으로도 보수 정치는 활기를 되찾을 것이기에

말이다. 지더라도 이 단일화는 선거 후 보수 정당의 힘과 세력을 키워 집권 세력을 능히 견제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해 양당의 리더들이 막후에서 만나야 한다. 

후보들까지 참여해 일정 시한 이내에 여론조사상 일정 수준의 지지 세력 득표에 앞선 측으로 단일화하는 것을 공론화하고 

양당의 수뇌들은 분열의 책임을 지고 당을 떠나 백의종군하는 것으로 봉합의 명분을 살려야 한다. 

그것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보수층 유권자는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