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혐오자들이 강요 안 당하도록 하는게 예절에 맞아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식성이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분류된다. 아이는 채소를 좋아하지 않고 매운 것도 먹지 못한다. 그러니 김치나 한국식으로 마늘을 듬뿍 넣고 조리한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찬이 주르르 늘어서 있는 한국식 밥상의 경우 아이가 좋아하거나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늘 듣는 소리는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지낼 때 아이는 좋아하는 몇 가지 음식을 돌려 가며 먹는다. 영국에서는 이래도 타박을 듣는 일이 없다. 2015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직장인 중 32%는 매일 똑같은 것을 점심으로 먹는다고 한다. 가장 선호하는 메뉴는 치즈샌드위치다. 같은 음식을 매일 먹는 것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음식을 싫어해 먹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상관하지 않는다. 영국인들은 음식에 관한 한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을 추구하며 각자의 취향을 건드리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편식을 내버려 두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들 덜 건강하거나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사실 영양소를 골고루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과 여러 종류의 음식을 다양하게 골고루 먹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그 전날 먹은 것을 다시 먹는 일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 일할 때 소위 밥총무였다. 일주일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인데 가장 유의할 점은 식단이 겹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어떤 메뉴를 빼 달라는 얘기를 내놓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고로 음식을 가려 먹어선 안 되는 거다.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반찬은 한 젓가락씩은 먹어야 하고. 그게 한국의 밥상머리 예절 아니던가.
한국 사회에서의 골고루 먹기에 대한 강조는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된다. 그건 물론 본인을 위한 것일 테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태도다. 최근 ‘오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생겨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으며 순식간에 세를 확장했다. 그냥 모른 척 슬쩍 안 먹으면 되지 오이를 ‘혐오’씩이나 한다고 외쳐야 한단 말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임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오이 혐오자’들은 오이를 안 먹는다는 이유로 꽤나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 싫으냐는 추궁 내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은 가벼운 정도고 먹으라는 강요를 당한 적도 많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안 먹겠다는 사람을 위한 건지 강요하는 사람의 만족을 위한 건지 살짝 헷갈리기 시작한다. 먹으라는 강요나 모욕 등 나쁜 기억까지 겹쳐 정말로 그 음식을 혐오하게 됐다면, 게다가 그런 강요나 모욕을 가한 사람까지 싫어하게 됐다면 그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 서로에게 말이다.
나 역시 아이가 좀 더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면 인생이 훨씬 풍요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식을 좋아하게 된다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늘어나는 것이니 기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나 모욕으로 되는 게 아니다.
더구나 자기 자식도 아닌 바에야 남이 어떤 음식을 싫어하든 말든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지 않나. 차라리 메뉴를 정할 때 싫어하거나 못 먹는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편이 낫다. 그게 더 예절에 맞는 태도다. 게다가 훨씬 즐거운 식사를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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