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치명적인 매력이 결혼 후에는 부부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상담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남편의 너그러운 성격에 반했어요”라던 여자가 “우유부단한 남편하고 사느라 너무 힘들어요”라고 푸념한다. 남편의 탄탄한 몸에 매력을 느꼈던 아내는 “남편은 저보다 운동이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라며 불평한다. 연애할 때 남편의 유머가 좋았다던 아내가 결혼 후에는 “남편은 만날 실없는 이야기만 늘어놔요”라며 한숨을 내쉰다.
플라톤은 인간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연인의 실체가 아니라 ‘이데아’를 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데아’를 투영하고 ‘이상화’한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완벽성을 부여하고, 이데아와 사랑에 빠진다. 시간이 흐르고 현실이 제대로 보일 때 사랑의 불꽃도 사그라든다.
사랑은 오해다. 뜨거운 사랑일수록 오해도 깊다. 결혼은 오해에서 비롯된 사랑으로 이뤄진다. 서글프게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니까.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애당초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가는 거야.”
결혼은 사랑이 빚어낸 오해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품고 살아가는 힘겨운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뤄질 수 없는 이상적 사랑과 현실의 결혼을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결혼한 부부들의 실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누가 누구보다 멋진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남편이라는 한 인간은, 그 자신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라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해주는 영웅이 될 수 없다. 상처 받고 지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동안 옆에서 말동무라도 되어 주는 남편이라면 훌륭한 거다. 힘든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옆에서 “기운 내”라고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정도의 남편과 같이 살고 있다면, 복 받은 거다. 다행이라 여기시라.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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