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29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2바이올린 부수석)
지난주 독일 드레스덴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5번을 연주했다.
드레스덴시(市)는 '문화궁전'이라 불리는 건물을 몇 년에 걸쳐 겉만 남기고 다 뜯어고쳤다.
다목적홀이 있던 공간엔 새로 음악 전용 홀을 만들었다.
개관한 지 몇 주밖에 안 돼 무대 뒤 휴게실에는 설계 도면이 아직 펼쳐져 있었다.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는 '문화궁전'의 역사와 그날 연주한 곡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았다.
"이 곡이 모스크바에서 초연될 때 저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었죠.
임신한 어머니가 쇼스타코비치 바로 옆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뭔가를 배 속에서 들었을 겁니다."
이 곡은 1974년 러시아 밖에서는 처음으로 드레스덴 문화궁전에서 연주되었다.
전설적 지휘자 키릴 콘드라신의 지휘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2017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곡을, 그 곡의 초연 자리에 있었던 지휘자와 연주했다.
나이 지긋한 청중 중에는 오래전 그날을 떠올린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바닥의 나무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무대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교향곡을 연주하며 작곡가의 삶을 생각했다.
그는 평생 러시아에서 살았고, 내가 태어나기 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지금 여기에 있다.
악보가 남아 있어서만은 아니다.
콘드라신 외에도 그를 잘 알았던 지휘자들과 15번 교향곡을 초연한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을 비롯한 교향악단들이
그의 음악을 되풀이해서 연주했고, 녹음을 남겼으며, 다음 세대 음악가들에게 전해주었다.
쿠르트 마주어가 7번 교향곡을 연습하던 중에 자신이 쇼스타코비치를 어떻게 만났는지,
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얘기해 주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음악은 이렇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면서 생명을 이어간다.
올해 우리가 초연한 마그누스 린드버그의 첼로 협주곡을 들었던 아이가 30년쯤 후에 그 곡을 지휘한다면?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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