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일보 2017.06.17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정권 바뀌니 또 대학개혁… 佛이 '국공립大 통폐합' 모범국?
그랑제콜 등 고등 교육기관들은 미래 짊어질 엘리트 교육 맡고
일반大 부실化된 사실 아는가… 부작용 따져보고 신중 기해야
교육 문제로 우리 사회 전체가 고통을 겪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육 개혁안을 내놓는 것 또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번 정권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아주 파격적인 실험을 준비하는 것 같다.
국공립대학교 통합 네트워크가 그 중 하나다.
서울대와 지방 거점 국립대들을 '통합 국립대'로 묶고, 통합 국립대가 학생 선발과 학사 운영, 학위 수여를
공동으로 하자는 게 골자다. 과연 이 실험이 고질적인 입시 지옥 문제라든지 대학 서열화에 따른
각종 병리 현상들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프랑스 대학 체제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국공립대학교 네트워크의 선행 사례, 혹은 모범 사례로 자주 거론되기 때문이다.
파리 대학교의 경우, 13개 대학이 하나의 틀 안에 모여 있고, '바칼로레아'라 불리는 대학입학자격고사에 합격한 학생들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데다가 학생들의 학비 부담도 매우 적어서, 공공성이 확보된 이상적인 대학 체제로 보일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그랑제콜(Grandes Ecoles)의 존재다.
그랑제콜은 일반 대학제도 위에 존재하는 상위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프랑스의 엘리트를 육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랑제콜을 빼고 프랑스 대학들이 마치 평등한 체제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명백한 오류이거나 사기이다.
마크롱, 시라크, 올랑드 등 전·현직 프랑스 대통령들, 수많은 장관과 고위직 공무원들, 최고경영자들을 배출한
국립행정학교(ENA)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는 입학이 지극히 어렵고, 수학(修學) 과정 자체가 이미 공직 수행 과정으로 인정되며, 졸업 당시 성적에 따라
일하는 부서가 정해지는 등 철저하게 행정·정치 엘리트 육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그 외에도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rieure), 폴리테크니크, 에콜 드 루브르 등 분야별로 최고의 엘리트를
길러내는 학교가 다수 존재한다.
프랑스 교육은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지나치게 엘리트 교육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둘째는 일반 대학들의 부실한 교육 수준이다.
대학은 해당 지역에서 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들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대학교 1학년 과정 교실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학생이 운집해 있다. 자연히 수업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우리의 '교실 붕괴'와 유사한 현상이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다.
학생 수가 워낙 많은 데다가 행정 인력이나 전산화 등의 수준이 과히 높지 않다 보니 학생에 대한 행정 서비스도
상상 이상으로 뒤처져 있다. 예컨대 신입생이 학생증을 발급받으려고 긴 줄을 섰다가 허탕치고 돌아오는 일을 수없이
겪은 끝에 대입 5~6개월 지난 후에야 겨우 손에 쥐는 수도 있다.
혹시 파리 대학교를 모범 사례로 생각한다면 꼭 한 번 현장을 방문해서 실상을 확인하기 바란다.
프랑스의 대학 제도를 이식한다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거의 무제한의 학생을 받다 보면 당연히 성적이 나쁜 학생들을 걸러내는 수밖에 없다.
법과대학인 파리 2대학(팡테옹-아사스 대학)의 경우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갈 때 살아남는 비율이 40%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실정에서 이런 식으로 60%의 학생을 무자비하게 쳐내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무한대의 학점 경쟁이 펼쳐질 것이고, 입시 지옥보다 더한 진급 지옥이 젊은이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랑제콜이 우수하고 일반 대학은 저급하다는 주장을 무작정 하려는 게 아니다.
나라마다 대학 제도의 장점과 단점이 서로 다르고, 목표하는 바와 철학이 다를 뿐이다.
다만 정확한 이해 없이 남의 나라 제도를 우리 편한 대로 왜곡해서 이해하고,
무비판적으로 흉내 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 공연히 이상한 제도를 도입하려다 그동안 애써 키워온 우리의 장점을 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최근 대학 평가 결과를 보면 서울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일취월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0년 걸려 이루어낸 그와 같은 성과를 이 정권 5년 내에 전부 망쳐놓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교육 개혁 실험을 경험해 왔다. 원래는 좋은 장점이 발휘되기를 기대하며 시작했건만,
그런 장점들이 발휘되기 전에 부작용들이 드러났고, 그러면 다시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새로운 부작용들을 만들어냈다.
결국 끊임없이 부작용들만 겪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가 권력을 동원해 대학들을 통·폐합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인지,
혹시 역대 최악의 부작용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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