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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세 가지

바람아님 2017. 6. 16. 10:25
중앙일보 2017.06.15. 03:04

81만개 일자리 비용
누가 낼지 밝혔어야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은 정치 언어의 교과서 같았다. “한 청년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일자리 얘기는 구체적·감각적이었다. “실직과 카드빚으로 근심하던 한 청년은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에 이렇게 썼습니다. ‘다음 생에는 공부를 잘할게요.’” 절정의 순간, 청중은 코끝이 찡해진다. 스토리에 감성이 더해지면 울림은 강렬해진다. 결정타는 그다음이다. 청년 실업률 11.2% 사상 최고. 감성이 울림이라면 숫자는 근거다. 그 순간, 대통령의 연설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언어가 된다.

취임 34일, 문 대통령의 첫 시정 연설은 그의 지지율이 왜 80%를 넘나드는지 알게 했다. 행동은 빨랐고 말은 심금을 울렸으며 효과는 강렬했다. 추가경정예산 통과가 목적이라고 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사회와 경제를 보는 시각을 담았다. 왜 일자리에 올인 해야 하는지 말했다. 지루한 설명 대신 스토리와 숫자를 담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언어와 달랐다. ‘불어터진 국수’ 같은 스타카토식 강렬한 비유는 쓰지 않았다.


야 3당엔 이런 재앙이 따로 없다. 스토리는 감성이요 숫자는 신뢰다. 구태의연한 프레임 싸움으론 불감당이다. 스토리엔 스토리로, 숫자엔 숫자로 맞서야 한다. 입장 다른 야 3당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기는 그러나 애초 불가능에 가깝다. 추경은 인사청문회와 마찬가지로 압도적 국민 지지율을 방패 삼아 통과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연설에서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공무원 일자리 17만 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공무원 17만 개 포함)란 숫자의 근거다. 후보 시절 대통령의 논리는 이랬다. ‘국내 공공일자리 비율은 7.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3%)에 크게 못 미친다. OECD의 절반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 그러려면 3%포인트를 높여야 한다. 이게 일자리로 환산하면 81만 개다.’


하지만 선거 때부터 이 숫자 자체가 큰 논란이 됐다. 나라마다 넣고 빼는 일자리의 기준이 다르다. OECD 통계는 국제노동기구(ILO) 것을 쓰는데, 우리는 행정자치부가 취합한 숫자를 썼다. 그래서 지난 정부가 통계청에 일자리 통계를 맡겼다. 그 결과가 지난 13일 나왔다. 공공일자리 비율은 8.9%. 많은 나라들이 집계에 포함하는 사립학교 교사와 병사, 민간 의료기관 종사자까지 합하면 이 수치는 최대 13~15%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공공일자리 비중은 이미 OECD 평균의 절반을 넘어섰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건 비용이다. 일반 정부 지출에서 공무원 보수로 나가는 돈은 21%다. 이미 OECD 평균(23%) 수준이다.

둘째, 17만 개 공무원 일자리에 돈이 얼마나 들지다. 대선 때는 5년간 21조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공무원은 한번 뽑아놓으면 30~40년 근무한다. 야 3당은 “향후 30년간 최대 200조~300조원의 재정 부담을 안게 된다”고 성토한다. 야당이 추경을 반대하는 핵심 이유인 만큼 이 숫자에 대해 설명했어야 했다.


셋째, 누가 돈을 낼 것인가다.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데, 그것도 세금으로 만드는데 공짜일 리 없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산타클로스 역할만 했다. 비정규직을 없애고 최저임금 올리고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했다. 모두 돈이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대선 공약에도 178조원의 뭉칫돈이 들어간다.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답은 나와 있다. 증세다.


물론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권의 운명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대통령은 말해야 했다. 어떻게 걷을 것이고 누가 세금을 더 내야 하는지. 지난 정권의 ‘증세 없는 복지’가 ‘복지 없는 증세’로 끝난 것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증세 없는 일자리’를 꿈꾸다 ‘일자리 없는 증세’로 끝날 수는 없잖은가. 대통령 적극 지지자 중엔 세금을 두 배라도 더 낼 용의가 있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지지율 80% 대통령이 못하면 누가 하겠는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