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 무서운 공작부인, 알고보면 호감女?

바람아님 2013. 9. 17. 09:53

(출처-조선일보 2012.03.13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서양 그림에서 추한 인물을 손에 꼽으라면 퀜틴 마시스(Quentin Matsys·1466~1529)의 '그로테스크한 노파'(1513년경)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원숭이 같은 얼굴, 육중한 체구, 하늘로 치솟은 머리에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이 여인은 정말이지 못생겼다. 지금의 벨기에인 플랑드르 지역 화단을 이끌었던 마시스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실제 인물의 초상화가 아니라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愚神禮讚)'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노파'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마시스는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진지한 모습이 잘 드러난 초상화를 남기기도 했다.

에라스무스는 어리석고 추악한 여러 유형의 인간상 중, '거울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며, 아직도 교태를 부리려고 하고, 볼품없는 가슴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미치광이 노파'를 언급했다. 이 문장이 가슴을 애써 부풀린 드레스를 입고 누군가를 유혹하듯 빨간 꽃봉오리를 오른손에 쥐고 있는 마시스의 여인을 연상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늙고 못생겼다고 해서 거울을 보거나 애정을 구하는 것이 죄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마시스의 '그로테스크한 노파' - 1513년경, 64.2×45.4cm, 

목판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이 작품은 흔히 '못생긴 공작부인'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판본의 공작부인 삽화가 이 그림을 본뜬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공작부인은 앨리스와 처음 만나서는 '아기가 재채기를 하면 때려야 한다'는 노래를 신경질적으로 불러댔지만, 나중에는 앨리스를 유쾌하고 다정하게 대한다. 앨리스는 공작부인이 처음에 비호감이었던 것은 다만 그녀의 요리사가 음식에 후추를 너무 많이 뿌렸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심성으로 치자면 에라스무스보다 앨리스가 한 수 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