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아버지는 이 같은 트라우마 때문에 내가 조르지 않으면 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우연히 언급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가 한국에 갔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반응은 영국에서는 보편적이다. 참전자들과 1106명의 전사자들은 제외하면 한국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공포에 묻혀 버렸다. 기억날 만큼의 수치스러운 패배도, 영광스러운 승리도 아니었고. 영국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귀환했을 때 사람들은 축하의 깃발을 달며 축제 분위기 속에 환영해줬지만, 한국전쟁에서 돌아온 영국군 병사들은 빈 철도 역에서 집까지 외로이 걸어가야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영국이 미국 다음으로 많은 8만1000명을 파견했는데도 말이다. 참전 군인들을 기리는 추모비도 2014년 12월에야 런던에 세워졌다. 그나마도 한국 정부가 비용을 지불한 덕이다. (고마워요, 대한민국!)
심지어 영국의 한국전쟁 참전 전우회도 스스로 해산했다. 2013년 7월 11일,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으로 향하는 그들의 마지막 퍼레이드를 보러 갔다. 그들은 모두 노인이었고 많은 전우들이 세상을 떠났다. 참가자가 점점 줄어 가는 것을 마냥 지켜보기보다, 멋지게 사라지기로 결정했다. 퍼레이드는 금방 끝났지만 몇 안되는 노병들은 훌륭한 군인처럼 보였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군의 전공 중 하나는 글로스터 연대의 임진강 방어전이다. 1951년 4월 글로스터 연대 1대대 600여 명은 끊임없이 몰려오는 3만 명이 넘는 중공군 3개 사단을 상대로 분투했다. 나는 중국인 참전군인으로부터 당시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1978년 베이징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저녁 지주위엔 공원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나이 든 남자가 다가와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영국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한국에서 영국군과 싸운 적이 있다고 말했다.
63 의용군 소속이던 그는 글로스터 연대가 끊임없이 쏘아 대던 기관총과 항상 배가 고팠던 것, 뒤에서 계속 진격을 명령하던 상관들, 전우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는 막차를 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국에서도 영국만큼이나 한국전쟁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야 얼마나 귀한 대화였는지 깨달았다. 한국전쟁은 영광스러운 승리 하나 없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린 일이었다. 더 나쁘게는 대만을 ‘해방’하기 위한 최후의 공격에 쓸 군대를 한국에서 소모한 셈이었다. 베이징대에서 만난 중국인 룸메이트는 중국인들이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 장군을 싫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유엔군은 중국이 군인들을 충분히 무장시킬 총기도 없이 인해전술을 감행하는 데 놀라곤 했다. 이는 중국 청년들이 방어할 무기조차 없이 기관총에 쓰러져 갔다는 뜻이다. 내 룸메이트는 누군가의 형제이자 아들이고, 남편이며, 친구였던 이 청년들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몬 펑 장군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 군인들이 견뎌야 했던 고통에 대해 쓰지 않겠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한국전쟁에 대해 많이 논할 것 같지는 않다. 이처럼 많은 나라에서 한국전쟁이 없었던 것처럼 외면하지만 어느 쪽이건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참혹한 일을 겪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계속 높아지고, 군사력이 증강되면서 2차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진실로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만약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옥의 심연을 들여다보자면 몇 가지를 예상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군보다 재래식 전력에서 뒤떨어지는 북한은 핵무기 사용의 문턱이 낮다. 미국의 증원이 이뤄질 공항과 항만을 파괴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2차 전쟁은 적어도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만큼이나 길어질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평양을 점령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북한 수뇌부는 깊고 복잡한 터널 안으로 후퇴해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1950년처럼 초기 며칠 동안 휴전선 아래로 내려온 북한군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처럼 전선이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인명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오늘날의 무기가 훨씬 살상력이 높고, 한반도의 인구밀도도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남북 모두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셋째, 북한은 홀로 싸워야 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사회주의 형제를 방어하기 위해 많은 군대를 보냈던 것은 아주 먼 과거의 일이다. 경제적 지원이나, 적은 수의 특수군 제공 같은 도움은 있겠지만 1950년 같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도 대규모 파병은 피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마주 앉아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 추측 가운데 어느게 맞는지 확인할 기회가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