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7.01 백영옥 소설가)
몇 달 전 라디오 방송 진행을 맡게 된 후 이래저래 불안함을 토로하자 친구가 글 한 편을 보내주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만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었다.
이 글을 읽어도 걱정이 가라앉지 않아 평소 친하게 지냈던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 프로그램'
비슷한 걸 맡게 된 심경을 토로했다.
"이런 경우 저는 '시킬 만하니까 시키는 거다'고 생각해요.
'판을 깔아줬으니 즐겁게 나를 보여주자' 생각하고요. 피디야말로 그 분야 베테랑인데.
백 작가가 못하면 피디 잘못도 있는 거 아닌가?"
그의 말을 듣자 거대한 불안에 연고를 듬뿍 바른 기분이었다.
살면서 수도 없이 걱정한다. 돈 걱정, 취업 걱정, 자식 걱정, 건강 걱정까지.
그중 특별히 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될 때의 걱정들.
하지만 내 경우 걱정 많은 성격 탓에 미리미리 일을 해치우는 습관이 생겨 조금 덜 실수하며 산 게 아닌가 싶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칼럼 연재를 할 때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늘 여분으로 2~3개 칼럼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하니, 말을 말자.
걱정 많은 사람은 걱정 덕에 자신을 점검하고 검토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참 피곤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본인으로선 피곤하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성격 탓에 사회에서 인정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걱정 그 자체는 아닌 셈이다.
문제는 '과도한 걱정'이고, 가장 큰 문제는 '걱정만 하는' 경우다.
친구의 마지막 말도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이었다.
걱정 많던 라디오 디제이 일도 그럭저럭 석 달을 넘겼다.
걱정을 하든 안 하든 시간은 잘만 간다.
<< 게시자 추가 자료 >>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영옥의 말과 글] [3] 혼자 있는 시간의 힘 (0) | 2017.07.08 |
---|---|
<오후여담>한여름의 도스토예프스키 (0) | 2017.07.07 |
[조용호의바람길] 능소화 (0) | 2017.07.01 |
[장석주의 사물극장] [1] 이태준이 잃어버린 만년필 (0) | 2017.06.30 |
[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걸음 (0) | 2017.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