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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사물극장] [1] 이태준이 잃어버린 만년필

바람아님 2017. 6. 30. 15:27
조선일보 2017.06.29. 03:10

작가에게는 재능, 열정, 시간, 종이, 필기구가 필요하다. 물론 의자, 탁자, 밀실, 닫힌 문, 밝은 빛을 차단할 커튼도 필요한 것들이다. 고양이만큼이나 까탈스럽고 예민한 작가들은 필기구에도 영향을 받는다. 작가와 만년필의 도구적 궁합은 대체로 잘 맞는다. 예전에는 '파커' '쉐퍼' '몽블랑' '파이로트' '워터맨' '라미' 만년필로 원고지 위에 글을 쓰는 작가가 많았다. 시인 박목월과 소설가 선우휘는 '파커 45'를, 이병주는 '쉐퍼'를, 박경리는 '몽블랑 149'를, 박완서는 '파커'를 썼다.

만년필은 아름답고 견고한 필기구로 사랑받았다. 1941년에 나온 '파커 51'은 만년필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이 시절은 만년필의 황금시대라 부를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볼펜이 나오면서 만년필의 시대는 갑자기 쇠락했다. 너도나도 값싸고 편한 필기구인 볼펜만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 작가들은 만년필에 대한 충성심을 지켰다. 1980년대 이후 '워터맨 100' '파커 듀오폴드' '몽블랑 149' 같은 만년필들이 사랑을 받으며 명성을 잇는다.


해방 이전 '문장'지를 내며 정지용과 함께 문단의 좌장(座長) 노릇을 하던 소설가 상허(尙虛) 이태준(1904~1971)은 소문난 만년필 애호가다. 한 산문에서 "나는 다른 방면엔 박하더라도 만년필에만은 제법 흥청거렸다"고 고백했다. 이태준은 미국 보스턴의 무어 사에서 만든 만년필로 '달밤' '까마귀' 같은 단편과 '문장강화' '무서록' 같은 산문을 썼는데, 어느 날 경무대 마당에서 야구를 하다가 아끼는 만년필을 잃어버렸다.


만년필 분실은 비극적 운명의 전조(前兆)였을까.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 속에서 가족을 이끌고 월북한 이태준은 1953년 남로당 숙청 때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졌다. 해방 전 '운문은 지용, 산문은 상허'라는 명성을 얻었던 미문가(美文家) 이태준은 강원도 장동 탄광 노동자지구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냈다. 1969년 어느 날, 누군가 노인치고는 키가 훤칠한 그를 알아보고 "한데 아직도 글을 쓰십니까?" 하고 묻자, 그는 "쓰고는 싶소만…"이라고 말을 맺지 못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