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태평로] 文 대통령, 송민순 만나고 윤병세 조언도 들어야

바람아님 2017. 7. 2. 10:41
조선일보 2017.07.01. 03:05

北核 동결과 연합 훈련 축소.. 보수 정권에서도 나온 얘긴데
문재인 정권서 문제가 된 것은 '문 정권=좌파'란 이미지 탓 커
우방의 의심 눈길 극복하려면 安保만은 통합과 협치로 가야
신정록 논설위원

어제 늦은 밤 한·미 정상회담이 '무사히' 끝났다. 열흘여 전 문정인 특보 발언 파문이 터졌을 때만 해도 무슨 사달이 날 듯한 분위기였지만 어느 정도 수습이 된 듯하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문정인 발언은 내용으로만 보자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핵·미사일 동결(凍結) 대 연합훈련 축소'는 작년 미 외교협회 공개 보고서에도 들어 있던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공화·민주 양측 전문가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며칠 전 '냉전 전사' 별명이 있는 제임스 클래퍼 전 미 국가정보국장이 동결과 북·미 이익대표부 개설을 교환하자고 했다. 트럼프 정권과 무관한 사람이라 해도 굉장한 파격이다. 그런데도 문정인은 문제가 되었다.


왜 그럴까. 이명박·박근혜 정부 고위직 몇 사람에게 물었더니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보수 정권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사실에 근거한 불신만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오해도 현실이다.


얼마 전 문 정부 안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을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면서 드는 근거가 미 MIT 포스톨 명예교수의 주장이었다. 포스톨은 줄곧 한반도 사드의 북 미사일 요격 능력에 의문을 제기해 온 사람이다. 미 국방부 자문을 오래해 온 전문가 얘기니 그 내용 자체에 대해서야 완전히 그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주장에만 기울어 있다면 사드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관계 현실을 풀어나갈 수 없다. 문 정부 사람들이 이러니 불신과 오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문 정부를 '반일(反日) 정부'로 본다고 한다. 쓰다주쿠대학 박정진 교수에 따르면 문 정부 출범 이후에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반일 국가로 보는 프레임'이 일본 내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4월 한반도 위기설의 발원지가 일본이었다. 요즘 일본 언론에는 한·미 관계를 이간하려는 듯한 내용들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실리는 일이 잦다. 이런 것들에 문 정부에 대한 비슷한 불신이 깔려있다. 이것도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서 북핵 해법에 대해 동결을 입구로, 폐기를 출구로 하자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 상황에 들어가면 동결과 폐기의 거리는 지구 이쪽과 저쪽만큼 멀다. 문 대통령의 좌파적 이미지를 가지고는 국제사회에서 사사건건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이 크다. 문 정부가 아무리 '독자 역할론'을 강조해도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게 될 것이다.


내일 귀국하는 문 대통령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안보 분야만은 통합과 협치를 해야 한다는 거다. 탈(脫)원전 독주가 주는 불안감도 중요하지만 안보 분야에 견줄 수 없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은 대선 때 문 대통령과 악연을 맺었다. 그 발단이 됐던 책 '빙하는 움직인다'에는 북핵을 둘러싼 국제협상의 리얼리티가 녹아 있다. 송 전 장관 같은 사람의 경험이 사장(死藏)되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감정을 버리고 그를 만나 조언을 듣기 바란다. 윤병세 전 장관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문 정부 사람들 눈에 '적폐'로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얘기를 들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대통령이라 할 수 없다.

문·트럼프 조합은 앞으로 최소한 4년은 간다. 이 4년 내에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손에 쥘 가능성이 높다.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시기에 내부마저 갈라져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여러 잘못과 혼돈에도 불구하고 아직 80%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잘하고 있다'는 것이기보다는 '제발 잘해달라'는 것에 가깝다. 그만큼 절체절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보는 '안전보장'을 줄여 쓰는 말이다. 안보의 본질이 보수라는 얘기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실험과 도박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