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아홉 번째 핵 보유국 될까
북한은 지난 4일 오전 9시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비행장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최대 고도 2802㎞까지 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면 ICBM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통상적으로 사거리가 5500㎞ 이상인 미사일을 ICBM으로 분류하는데 최대 고도가 2802㎞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ICBM이라면 사거리, 재진입, 유도조종, 단 분리 등에서 성공해야 한다”며 “화성-14형의 사거리는 7000∼8000㎞로 평가되는데 나머지 재진입 기술이나 이런 것들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ICBM 개발의 결정적인 성공 여부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다. ICBM은 우주 공간을 비행하다 대기권에 재돌입해 지표면의 목표물을 타격한다. 중요한 것은 재돌입할 때 엄청난 압력과 진동, 7000도에 달하는 고열을 견뎌내야 한다. 북한은 2016년 발행한 책 『절세위인과 핵강국』을 통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필요한 탄도탄전투부첨두(탄두부)의 열 안정성과 열보호피복제 침식 정도 등의 평가를 위한 시험을 통해 당당히 기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번 ICBM급 화성-14형의 발사를 통해 이를 입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 강국 지위, 김정일의 가장 큰 업적 꼽아
비공식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등도 북한처럼 핵을 보유하기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속내를 철두철미하게 감췄다. 자와할랄 네루(1889~1964) 전 인도 총리는 “우리는 전쟁과는 거리가 먼 원자력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다른 목적에 쓰이도록 인도가 강요를 받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네루의 애매모호한 성명이 인도의 원자력 개발에 중요한 원칙이 됐다. 중국·파키스탄을 견제하려던 인도는 그동안 숨겨왔던 욕망을 74년 5월 15일 부처님 탄신일에 핵실험을 통해 드러냈다. 이때 붙여진 코드명이 ‘미소 짓는 부처’였다.
이스라엘은 핵실험을 하지 않았고 핵 보유국도 선언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골다 메이어(1898~1978) 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두 번째 국가도 되고 싶지도 않다”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천명했다. 모세 디얀(1915~1981)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우리가 원자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단지 우리는 그러한 무기를 사용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처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핵무기 보유에 관한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NPT 가입 안 해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북한이 85년 NPT에 가입했기 때문에 이들 국가와 달리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멋모르고’ NPT에 가입한 것은 러시아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조건으로 경수로 핵 발전소를 제공하겠다고 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북한은 전력난 해소를 위해 핵 발전소가 필요했다. 나중에 이 가입으로 인해 많은 갈등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사달이 난 것은 2002년 10월이다. 켈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으로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 발각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갈등을 빚었다.
우라늄 농축 핵무기 개발은 NPT 위반
북한이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과 다른 결정적 차이점은 미국과의 관계다. 유엔 안보리나 IAEA가 이들 비공식 핵 보유국의 지속적인 핵 보유에 대해 아무런 규제를 못하고 있는 건,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략적·국내 정치적 이유로 미국의 어느 정부도 손댈 수 없는 ‘성역’으로 간주되고 있고, 인도는 미국의 핵 협력 파트너로 공식화됐다. 파키스탄은 알 카에다 소탕의 명목으로 미국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결국 핵 보유가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43년 전부터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74년 3월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 제5기 3차 회의에서 채택한 미국 상·하 양원에 보내는 공개서한에서다. 북한은 당시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2년이 지났지만 군사적 대결과 전쟁 위험이 지속된다”며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40년이 넘도록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노동신문에서 “핵 문제는 남조선 당국이 끼어들 명분이 없다”며 “한반도 핵 문제는 철저히 우리와 미국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포함한 안보 문제를 통미봉남(通美封南, 한국은 무시하고 미국과 대화)으로 풀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냉담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화성-14형 발사에 대해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혹독한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번 도발이 미국이 설정한 ‘레드 라인’(금지선)에 접근한 것으로 판단, 경제·외교적 제재뿐 아니라 군사적 옵션도 동원할 수 있다는 등의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7·6 베를린 제안을 통해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의 동시 추진 의지를 밝히며, 이 과정에서 ‘운전자’ 역할을 자임했다. 문 대통령의 제안이 김정은의 마음을 움직일지 지켜볼 일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