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데스크에서] 文 정부의 참 간단한 해법들

바람아님 2017. 7. 21. 08:06

(조선일보 2017.07.21 김신영 경제부 차장)


초등학교 시절 남동생이 쉽게 돈 벌 방법을 알아냈다고 했다. 

"10원짜리를 다 모아야지. 10원짜리가 없어서 난리가 나면 100원에 팔 거야." 

시장을 너무 얕본 동생은 코 묻은 동전만 몇 개 모으다 말았다.


태국에서는 2011년 취임한 잉락 전 태국 총리가 공약으로 내세워 표를 긁어모은 쌀 매입 정책을 두고 '쌀 스캔들'이 불거졌다.

관련 재판 기사를 보니 오래전 동생의 무모했던 계획과 큰 틀에서 비슷했다. 

정부가 시장 가격보다 50% 비싸게 쌀을 사들여 창고에 쌓아둔다. 

최대 쌀 수출국인 태국이 쌀을 안 팔면 전 세계 쌀이 부족해진다. 그때 비싸게 판다.


열 살 꼬마의 동전 매점매석은 우스개 추억담이다. 

국가가 이런 정책을 세우고 실행한다면, 그건 사기다. 

어느 때보다 넓고 복잡한 자유경쟁시장의 '판'이 깔린 요즘 세상이다. 

태국이 수출을 안 하면 신바람 날 경쟁국들이 널렸다. 

인도·베트남이 앞다퉈 쌀 수출을 늘려서 태국은 첫해에만 5조원 재정 손실을 보고 쌀만 썩혔다. 

타임은 이 실패한 정책을 '듣기에만 간단한 바보들의 계획'이라고 평가했다.


국가 간 장벽이 내려갈 만큼 내려갔고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가 빛의 속도로 오가는 시대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외치는데 한쪽에서는 저출산이라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다단한 이런 세상에 너무 간단한 해법을 들고 나온다면 의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얼마 전 '복잡한 현대 사회에 간단한 해법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논증했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간단한 해법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해법이 존재한다면 이미 누군가가 시행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1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한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남짓 지났다. 묵은 난제(難題)를 풀 쉬운 해결책이 많이도 나왔다. 

대부분 아주 간단하다. 이런 식이다. 

저소득층이 생활비 부족으로 고생하면 최저임금을 올린다. 

영세 자영업자가 불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겨울 텐데? 세금 더 걷어서 지원한다. 

보험료가 너무 올라 국민 불만이 커지면 보험사에 내리라고 하고, 

원전 사고가 대재앙이라면 앞으로 안 지으면 된다.


정부는 5년 동안 추진할 핵심 정책을 담은 '100대 국정과제'도 19일 공개했다. 

200쪽짜리 보고서에 3쪽 들어 있는 재원 조달 방안으로 487개 실천 과제를 정말 달성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논란이 거센 원전 추가 건설에 '백지화'를 못박은 이 보고서는 '부족한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를 늘려서 메우겠다'고 제안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미 하지 않았을까.


미국 코미디 영화 '엔비(Envy)'의 주인공 닉은 뿌리기만 하면 개 배설물이 사라지는 희한한 스프레이를 발명해 갑부가 된다. 

닉의 스프레이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이런 구호를 외친다. 

"사라지는 개X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알고 싶다!" 맞는 얘기다. 

골치 아픈 문제가 기적처럼 풀린다면 의심하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