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설왕설래] 여론 중독

바람아님 2017. 7. 13. 12:24
세계일보 2017.07.12. 23:29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2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여론조사 만능주의’ ‘반의회정치’ 등의 논란이 벌어지자 새정치연합은 “‘이완구 후보자는 불가’라는 국민 여론에 따라 이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라”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여론’을 문 대통령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 같다. 잇단 부적격 인사 비판을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는 논리로 정면돌파하려 하고 있다. 고공행진하고 있는 지지율도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민심이 천심이긴 하지만 민심은 갈대와 같다.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국민이 호랑이다”라는 말로 변덕스러운 민심을 압축한다. “열 가지 중 하나만 잘못해도 물고 늘어지는 게 호랑이다. 국민은 간단하게 뜨거워지고 간단하게 차가워진다.” 문 대통령을 비판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차분히 숙의를 거치지 않는다면 (높은) 여론지지의 거품이 곧 걷어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소 부풀려진 여론조사 결과에 취해 각종 좌파정책을 밀어붙이고 인사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는커녕 그대로 강행한다면 국민들은 곧 등을 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론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중독성’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인물과사상’ 블로그에 쓴 글에서 한국 여론 형성 구조의 10가지 특성을 열거했는데 그중에 “성찰을 어렵게 만든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이것이 “바람에 약하고 바람을 사랑하는 여론 형성 구조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것이다. “언제든 바람 한 번 불면 쉽게 뒤집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의 과오를 심각하게 성찰하기보다는 바람을 만들 수 있는 드라마·이벤트를 연출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는 정치인들의 한탕주의를 창궐케 하고 성찰의 씨를 마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도자는 냉철히 분석하고 고독한 결단도 내려야 한다. 여론에 휩쓸리는 것은 수천 갈래의 숲길을 눈을 감고 걷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국민 눈치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이끌고 갈 줄도 알아야 한다.


김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