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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탐구생활] 8월 ‘백두산위인 칭송대회’
2 북한 군인들이 백두산 정상에 오르고 있다. 저 멀리 암벽에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이라고 새겨진 글귀가 보인다.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조선중앙TV]
북한 사람들은 백두산을 ‘모든 산의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고 한민족의 넋이 깃들어 있어 조종(祖宗)의 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산마루(頭)가 희다(白)는 뜻에서 붙여졌다. 백두산의 산마루에는 사시사철 흰 눈이 쌓여 있다. 백두산의 행정구역은 양강도 삼지연군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북한)을 알자면 백두산을 보아야 하며 조선에서 혁명을 하자면 백두산을 알아야 한다”며 백두산을 추켜세웠다. 북한은 김일성이 항일혁명을 백두산에서 시작했고 김정일은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래서 백두산을 ‘혁명의 성지’라고도 부른다. 김정일은 실제로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2년 집권하면서부터 ‘백두혈통’‘백두의 칼바람 정신’‘백두산 대국 ’등 백두산을 활용한 선전구호로 3대 세습을 정당화하고 있다. 아울러 김정은 시대의 빨치산 가요라고 선전하는 ‘가리라 백두산으로’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 자신의 대의원 선거구도 백두산을 넣어 ‘제111호 백두산 선거구’로 명명했다. 이 선거구는 백두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양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과거 선거구를 번호로만 공개했는데 김정은은 2014년부터 번호와 지명을 함께 발표했다.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서 백두산을 한 번은 다녀오게 된다. 해마다 정치적 행사나 기념일 등을 전후로 백두산 전적지 답사와 행군에 동원된다. 북한에서는 이를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길’이라고 부른다. 노동신문은 2015년 4월 2일 “지난 1년간 2700여 개 단체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답사행군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혁명전적지 답사는 우리 혁명을 완수할 때까지 계속해야 할 중요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2014년, 2015년 답사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격려하러 백두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보통 1주일 일정의 답사길은 김일성의 일제강점기 활동 무대인 보천보와 삼지연 등을 거쳐 백두산 등정으로 이어진다. 하루에 많게는 40㎞ 이상의 강행군을 한다. 양강도 혜산시 혜산제지연합기업소에 근무한 탈북민 최지영씨는 “김일성과 항일혁명투사들이 백두산에서 혁명활동을 할 때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행사이지만 여름에는 뙤약볕으로 열사병·일사병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동상으로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런 불편을 줄이기 위해 2007년 ‘지상궤도식 삭도(케이블카)’를 일부 구간에 설치해 답사 행사를 편리하게 하고 있다. 이 케이블카는 백두산 혁명전적지 삭도관리소 백두역에서 산 정상에 가까운 향도역까지 1.3㎞의 급경사에서 운영한다. 백두역과 향도역은 케이블카의 양쪽 끝에 있는 간이역이다. 케이블카는 한 개 차량에 최대 100명을 태워 10분 이내에 도착할 뿐 아니라 운행 도중 백두산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고장이 잦아 걸어서 올라가기도 한다. 향도역에서 내려 산 정상인 장군봉(2750m)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북한은 산 정상에서 천지로 내려가는 공중 케이블카도 설치했다. 공중 케이블카가 고장이 날 경우를 대비해 계단도 있다. 이들을 이용해 천지로 내려가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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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투사 고통 체험 여정, 군복 입고 답사
1 북한 청년들은 6월이 되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길’에 나선다. 항일혁명투사들의 고통을 체험한다는 의미에서 상의는 노농적위군(예비군), 하의는 교복 바지를 입고 행군에 참가한다.
북한은 해마다 6월부터 청년들을 대상으로 백두산 답사를 시작한다. 김정일이 평양제1중학교를 다니던 14살 때인 1956년 6월 5일 청년들을 이끌고 백두산 지역으로 가는 길을 개척했다는 데서 유래됐다. 대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반드시 백두산 답사를 가야 한다. 이 답사길은 김일성과 항일혁명투사들의 당시 고통을 체험하는 여정이라 학생들도 옷부터 교복이 아닌 노농적위군 복장을 한다. 노농적위군은 한국의 예비군에 해당하는 민간군사조직이다. 모자는 왕별이 새겨진 것을 착용하며 신발은 군화 스타일의 운동화를 신는다. 샌들 같은 신발은 절대로 안 된다. 평양방직공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김성남씨는 “대학생 때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던 기억이 나고 혁명사적지라 관리기관이 잘 먹고 자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잠은 답사생들을 위한 숙영소라는 숙소에서 자며 쇠고기 국밥이나 돼지고기 등이 제공된다. 참가자들은 답사 1주일 동안 행군과 함께 시낭송대회·혁명가요합창공연·문답식학습경연·우등불모임(캠프파이어) 등을 한다. 김씨는 “답사 첫날에는 혁명전적지를 둘러보면서 김일성 등 항일혁명투사들이 ‘이렇게 고생했구나’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마지막날에는 그동안 같은 내용이 반복돼 감동이 떨어지고 지겨웠다”고 털어놨다. 올해도 전국 청년학생들이 지난달 1일부터 백두산 답사행군을 시작했다. 최근 들어 혁명사적지는 아니지만 김정은이 공들인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가 필수코스에 포함됐다. 이 발전소는 1·2·3호 등 3개가 있으며 1·2호는 2015년 10월, 3호는 2016년 4월에 각각 준공됐다. 이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은 인근 양강도 삼지연군 학생소년궁전·문화회관 등 공공건물과 가정집으로 공급되고 있다. 북한은 오는 8월 백두산 지역에서 개최될 예정인 ‘백두산위인 칭송대회’를 앞두고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올해 김일성 생일 105주년과 김정일 생일 75주년, 김정은의 당과 국가 최고 지도자 추대 5주년을 맞아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북한은 세계인들에게 김씨 세습왕조의 정당성을 전파할 목적으로 진행하는 이 행사를 위해 외국인들을 대규모로 초청할 예정이다. 지난 4월 김일성 생일 105주년을 맞아 평양을 방문한 중국·멕시코·방글라데시·네팔 등지의 외국인들에게 설명회를 열었다. 북한은 2005년 8월 노동당 창당 60주년을 맞아 백두산 지역에서 ‘백두산 위인 칭송모임’을 개최했다. 평양을 찾는 중국동포들이 “평양이 비었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 고위 관료들은 자주 백두산 지역을 방문한다. 중국 지린성 훈춘시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중국동포 이재덕씨는 “최근 북한 내각의 국토환경보호성 부상(차관)을 만나러 갔다가 갑자기 백두산 지역에 출장을 갔다는 소식을 한참 아래급인 과장을 만나 듣고 왔다”고 전했다. 올해 행사는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주도하고 있다. ‘백두혈통 우상화’작업의 하나로 치러지는 이번 행사를 위해 북한은 고위 간부와 주민들을 동원해 양강도와 삼지연군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에 앞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2015년 4월 정령을 통해 백두산 일대 삼지연군 무봉노동자구를 ‘무봉국제관광특구’로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이 특구는 개발면적이 84㎢로 여의도 면적(2.9㎢)의 29배에 달한다. 중국 지린성 허룽(和龍)시가 북한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허룽시는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중국광성투자유한회사를 들어오게 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270호가 2016년 3월 발표한 뒤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무봉국제관광특구가 상당히 구체적인 개발계획도 수립되고 중국의 투자계획도 있지만 중국이 참여하는 대북 제재 이후 이런 움직임이 거의 중단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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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 시절 소중했던 식량 ‘강냉이 국수’
북한 사람들이 여름철 별미로 찾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강냉이(옥수수) 국수’다. 남한 사람들에게 옥수수는 웰빙음식이지만 북한 사람들에게는 희노애락이 담긴 음식이다. 북한은 산악지대가 많기 때문에 농경지 가운데 밭의 비중이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쌀 다음으로 옥수수가 주식물이다. 김일성은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6년 “강냉이는 밭곡식의 왕”이라고 강조하면서 옥수수 재배를 장려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산비탈은 대부분이 계단식 옥수수 밭으로 개량됐다. 옥수수가 북한 사람들에게 희노애락이 담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다. 한 줌의 옥수수가 삶과 죽음을 결정하던 시기였다. 당시 평양시 식량배급소들은 쌀 대신 옥수수와 옥수수국수(사진)로 나눠 공급했다. 선택은 주민의 몫이었다. 평양시민들은 대부분 옥수수보다 옥국수를 선호했다. 국수가 좋아서가 아니다. 옥수수는 잘게 부수고 채소를 넣어 옥수수밥을 지은 다음에 국·찬을 갖추어야 하지만 옥수수국수는 끊는 물에 데쳐 대충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옥수수 1㎏을 잘게 가공하면 껍질·눈·가루 부스럼 등이 분리되면서 800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수는 물에 섞어 먹기 때문에 부풀어져 1㎏이 1.2㎏으로 된다. 평양시에서 살다온 탈북민 이은영씨는 “한 끼를 걱정하던 시절에 국수를 물에 불려 양을 늘려 국수인지 죽인지 분별할 수 없는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아사(餓死)를 면했다”고 말했다. 이런 국수마저 구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국수는 소화 흡수가 잘 되지 않고 면발이 부드럽지 못해 금방 굳고 맛이 좋은 편이 아니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요 식량 원천인 강냉이의 가공에 힘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각 대학들이 ‘강냉이 연구소’를 만들었다. 그 결과 소화 흡수가 잘 되고 맛이 좋아진 변성 강냉이 국수가 나오기도 했다. 2015년 완공한 평양강냉이가공공장은 판매용으로 만든 마른 국수를 포장해 팔기 시작했다. 이 국수는 시장에서 구매해 집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또한 최근 들어 평양에 옥수수음식 전문점도 속속 생기고 있다. 대표적으로 ‘평양강냉이전문식당’을 들 수 있다. 이 식당은 국수·만두·차 등 옥수수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음식은 국수라고 한다. 옥수수로 뽑은 면을 양배추 김치물에 담가 만든 다음 고구마잎줄기·버섯·풋고추·미역줄기 등을 얹어 제공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평양강냉이전문식당 요리사들이 강냉이를 가지고 국수를 비롯한 여러가지 음식을 잘 만든다”고 칭찬했다.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ko.soos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