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9.25 김진명 정치부 기자)
중국 외교부가 21일 공개한 한·중 외교장관회담 발표문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발표문은 지난 20일 뉴욕에서 이뤄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강경화 장관이
"한국 측은 한반도에 다시 전술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고
돼 있었다. "전술핵 얘기는 안 했다"는 우리 정부의 설명을 믿는다면 중국이 어떤 의도를 갖고
회담 내용을 왜곡한 것이다.
22일 브리핑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은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고위층이 최근 여러 번
전술핵무기를 다시 배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공개된 일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술핵 재반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었고, 정부도 "검토한 적 없다"는데 무슨 문제냐는 말로 들렸다.
우리 정부의 현재 입장을 미래에도 적용되는 '약속'으로 치환하는 중국을 보면서
대만 학자 린원청(林文程)의 저서 '중국을 다룬다: 대중국 협상과 전략'을 떠올렸다.
대만 국가안전회의 자문위원을 지낸 그는 중국식 협상술을 분석해 '중국이 일상적으로 운용하는 책략'을 여럿 소개했다.
강경화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0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그중 하나가 바로 '사실 왜곡'이다.
린원청은 "중·미 간 대사급 회담에서 중국은 항상 대외에 긴 성명서와 뉴스 원고를 발표했다.
원고 내용은 양국의 협상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며
"국제사회에서 혹은 미국 내부에 잘못된 인상을 조성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중국이 '상대의 말로서 상대를 공격'하는 데도 능하다고 했다.
"상대가 과거에 한 말, 과거의 약속 등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가 상대를 반박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왜 '전술핵 재배치는 안 한다는 약속'을 지어내서라도 기록에 남기려고 하는지 알 만하다.
린원청의 책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전형적인 중국식 협상술에 얼마나 자주 말려들어 갔는가 느끼게 된다.
그는 '이간(離間)'도 중국식 협상술의 하나라고 했다.
"중국은 항상 상대 내부의 모순을 이용"하며 "정객, 정당, 오피니언 리더 및 조직의 이견(異見)을 부각시켜
상대의 협상 역량을 약화시키고 상대의 협상 마지노선을 파악하여 수세에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린원청은 "만약 (중국의) 요구가 달성되지 못하면 장차 모종의 나쁜 결과가 출현할 것"이라는 '위협'도 중국식 협상술에
포함시켰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과정에서 우리가 겪은 일이다.
책 뒷부분에 린원청은 이렇게 조언했다.
"소국이 대국을 이기려면 소국의 내부는 반드시 일치단결하여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부에 공통된 인식을 마련하고 중국의 압력에 대항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우리는 일치해서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어떤 안보 수단을 동원하든 중국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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