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봉천승운황제는 다음과 같이 조칙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과 기자 이후 강토가 분리되어 오다가, 고려 때 이르러 삼한의 통합을 이루고, 우리 태조께서 조선을 개창하여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마련해 주셨다. 나라가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하늘이 돌봐주신 덕에 위기를 모면하고, 독립의 터전을 세우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수십 차례 간청하니, 그 대동단결한 뜻을 끝내 물리칠 수 없어 천지에 고유제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여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고 이 해를 광무 원년으로 삼아 독립의 기초를 창건하여 자주권을 행사하고자 하니 세상에 선포하여 모두 듣고 알게 하라......(중략).......진실한 마음으로 당부하노라. 우리 스스로 나라의 힘을 키워 강하고 아름다운 대한의 길을 가라. 여러분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선조들의 혼백이 도우리라”(대한제국 선포식에서 반포된 조서의 내용)
1897년 10월 12일은 고종이 천제를 지내고 황제로 등극하여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선포한 역사적인 날이다. 고종(1852~1919) 임금은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며 대내외에 독립국임을 알렸다.
14일 오전 서울 시청광장에서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대한의 시작, 그날!’ 재현행사가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청·러·일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세계열강과 대등한 자주 독립국임을 거듭 재천명하고 국권의 강화를 세계만방에 알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열렸다.
고종은 1897년 환구단을 축조하여 하늘에 제사를 고하는 고천제를 거행하며 황제국을 천명했다. 환구단은 1913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현재 조선호텔 자리) 지금은 신위를 봉안한 황궁우와 석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남아있다. 이번 행사는 서울광장에 환구단을 가설하여 진행했고, 고종황제의 즉위과정을 기록한 '대례의궤'를 기초로 재구성됐다. 대례의궤는 6일간에 걸친 고종의 즉위 과정을 23개의 절차로 나누어 기록한 것이다.
대한문이 열리자 고종을 태운 어가행렬이 시작됐다. 선두 행렬은 신식 의복을 입은 경무관과 순검이다. 1895년에 신식제복이 도입되면서 군인과 경찰이 착용하기 시작했다.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 황개와 고종이 등장했고 그 뒤를 근시관원과 제사의 배향관으로 참석할 문무백관이 따랐다. 광장에 마련된 홍살문을 지난 행렬은 즉위식인 ‘등극위’를 하기 위해 환구단에 들어섰다. 이날 행사에서 고종역할은 고종의 증손자이며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황사손인 이원씨가 맡았다.
좌장례의 인도로 황제위 등극을 하늘에 고하는 ‘고천제’가 시작됐다. 환구단에 선 고종은 하늘의 신을 불러오기 위해 향을 피워 올렸다. 이어 이 나라 이 백성을 굽어 살펴 달라는 내용의 고종이 직접 지은 축문을 예의사가 읽었다. 백성을 생각하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내용이었다.
고천제를 마친 고종은 환구단 옆에 마련된 등극단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황제위에 오르는 '등극위'가 거행됐다. 하늘에 제사를 올릴때는 국왕의 예복인 구장복을 입었지만 황제를 상징하는 12장복을 구장복 위에 덧입었다. 12장복과 함께 구류면을 벗고 12류 면류관을 썼다. 문무백관과 행사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함께 황제국임을 알리는 “산호, 산호, 재산호”, “만세, 만세, 만만세”를 힘차게 외치는것으로 고천제는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