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8.28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전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음식점을 운영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을 겪는다.
하루는 어떤 손님이 아이 기저귀를 홀 테이블에서 갈고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한 적이 있다.
황급히 달려가 별도의 독립된 공간으로 안내하겠다고 했더니 부모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특이한 소품이나 아끼는 식기는 슬금슬금 없어질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내놓지를 못한다.
이 정도는 약과인 모양이다. '노키즈 존' 논란, 난폭 운전, 지하철 백태, 막말, 갑질 등 공공장소에서의
무질서, 무례, 비매너 목격담들이 연일 언론과 SNS를 타고 흐른다.
나는 근대 시민사회의 가장 시원적 작동 원리는 민주성이 아니라 공공성이라고 믿는다.
'질서를 지킵시다'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남에게 피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맙시다' '공용 물건을 소중하게 씁시다' 같은
기초 생활규범이 제대로 준수되는 것이 기본권 보장이니 삼권분립이니 하는 정치 담론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요즘은 잘 듣지 못하는 말이 하나 있다. '공중(公衆)'이라는 단어다.
공중전화는 자취를 감추었고, 공중목욕탕은 대중탕이라 불리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공중질서, 공중도덕, 공중위생 등은 구시대 계몽주의 구호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지 용도 폐기된 듯하다.
공중은 근대화 시기에 일본이 만들어 낸 개념이다.
무질서하게 비규범적으로 모인 우연적 다중(多衆)이 아니라 공통의 관심사, 공동의 규약, 공공의 사용 등을 전제로
설정된 공동체의 의식 있는 구성원을 지향하는 의미다.
대중(大衆), 민중(民衆), 군중(群衆)만 남고 공중은 존재감이 희미하다면 그 사회는 아무리 정치 담론이 발전한 사회라
할지라도 살기 좋은 사회일 수가 없다.
공공장소에서의 매너와 에티켓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꼰대짓'으로 냉소의 대상이 되지만, 꼰대라고 욕먹어도 할 수 없다.
서로 스트레스 덜 받고 살려면 민중의 시대, 대중의 시대 이전에 '공중의 시대'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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