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김세형 칼럼] 중국에 두 번 속을 것인가

바람아님 2017. 11. 14. 08:45
매일경제 2017.11.13. 15:03
APEC 정상회의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 오후(현지시간) 베트남 다낭 크라운플라자 호텔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부원장인 가우쭈구이(高祖貴)가 8일 한국을 방문해 힐튼 호텔에서 조찬강연하는데 나는 가서 들어보고 질문도 했다. 그는 중국은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첫머리에 설명했다.

"한반도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4강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베이징과 무척 가깝다. 한국은 산업화된 공업국가로서 중등 강국이다. 선진국이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크다."

중국 국토는 28개국을 접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인도, 러시아 같은 강국도 있다. 중국의 접경국가 가운데 한국의 위상을 솔직하게 강국으로 본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가우 부원장은 "한국 산업은 이제 중국과 경쟁 관계다. 삼성전자가 만드는 휴대폰은 중국 화웨이 텐센트 등과 경쟁 끝에 밀려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대차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설명에서 뺐다.

가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중 관계에 너무 간섭한다. 미국이 주도권을 강화하려고 한국을 이용하고 영향력을 키우려 함으로써 동북아 정책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나는 강연 후 그에게 "이제 사드 보복은 완화될 것인가. 한중 정상회담은 조기 개최될 것인가" 물었다. 그는 "사드 문제로 한중 양국이 타격을 입었다. 이미 한중 고위 관계자 간 소통이 이뤄지고 있으며 롯데마트의 경우도 분위기가 호전되고 있다. 작년 수준으로 좋아질 것이다. 관광객들은 한국을 좋아한다. 곧 몰려올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한때 말폭탄이 오갔으나 2개월가량 김정은이 무력 도발을 하지 않은 것은 좋은 징조라고 설명했다.

가우의 설명에는 많은 단서가 들어 있다.


첫째, 중국의 진짜 페르소나를 발견한 사실이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의 한국산 제품 수입이 급감했을 것으로 보는가. 놀라지 마시라. 올 상반기 중국의 1대 수입국은 한국이었다. 일본 2위, 미국 3위 순이다. 한국에서의 수입은 12.6% 증가했고 미국에선 19.6% 늘었다. 한국산 수입품은 반도체, 석유화학이다. 그들이 수출품을 만들기 위해 아쉬운 부품은 철저히 수입한다. 우리는 돈이 되는 중국의 소비재 시장에 들어가고 싶어하나 현대차, 삼성 휴대폰, 롯데마트, 한류문화는 처절하게 쫓겨나고 있다. 그것이 중국의 두 얼굴이다. 이번에 중국의 가면을 벗은 맨 얼굴의 추함을 본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이제 투자하라고 해도 마음놓고 할 수 없다. 어떻게 중국을 믿겠는가라고들 말한다. 따라서 사드 보복을 해제해도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이 자존심 차원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비굴하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는 광풍에 떠올라간 집을 타고 고향에 돌아가지만 그곳은 변해버렸다.


둘째, 틈만 나면 한미 간 틈새를 벌려 놓으려는 집요함이다. 사실 트럼프의 말들은 대개 허풍이고 공갈이어서 믿기 어려우나 중국이 더 많은 역할을 했으면 북핵이 저렇게 악화되지 않을 것이란 말만큼은 트럼프의 판단이 정확하다. 중국은 심지어 이동 발사대로 쓰는 트럭도 제공했으며 그동안의 숱한 유엔 결의를 뒷구멍으로 숨통을 열어줬다. 이제야 트럼프가 팔목을 비트니까 원유 제공 정도 말고는 거의 다 구멍을 막아가는 것 같다. 그런 연유에는 한국이 박근혜 정부 시절 한때 자기네 편에 바짝 붙었다가 핵실험 후 미국 쪽으로 가서 한·미·일이 중국을 포위하는 연합 세력에 가담하니 몹시 추웠던 것이다. 사드 보복으로 한국도 손해 봤지만 한국인 관광객도 중국에 가지 않았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 성사, 사드 보복 해결 등을 위해 3불 정책(사드 추가 배치 금지, 미국의 MD 체제 미가입, 한·미·일 군사동맹 거부)을 제시하니 바로 이때다 하여 한미 간에 틈을 벌리려 필사적이다.


한국은 좀 더 자긍심을 지켜야 한다. 파머스턴 경의 말마따나 국가 간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오로지 국익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한미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드 추가 배치 금지 카드는 주권을 포기한 처사로 거둬들여야 마땅하다.

셋째, 한중 산업이 경쟁 관계라는 무서운 선언이다. 위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차 등에 대해 약간 언급했지만 중국 기업의 약진을 견제하는 노력을 등한시했다. 한국은 정권교체 후 적폐 청산, 노조 우대 등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국내 문제에 갇혀 있는 동안 세계는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중국 같은 나라는 한국에 뒤처진 제조업의 기술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다.


여기서 잠깐, 중국 주요 IT기업들의 주가를 한번 살펴볼까.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2014년 150조원이던 것이 2017년 10월 말 476조원으로 삼성전자 400조원을 크게 능가한다. 알리바바는 같은 기간 282조원→530조원으로 성층권으로 비상했고 ICBC-H 같은 생소한 회사의 시가총액도 350조원이다. 지리(GEELY)자동차의 주식가치는 3조원이던 것이 3년 새 31조원으로 10배 이상 급등했다. 한국에 이런 기업들은 삼성전자 말고는 없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중국 드론기업 DJI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70%를 넘고 시장가치도 100억달러를 상회한다.


가우의 강의 제목은 '중국 특색 대국외교의 신국면'이었다. 강의의 첫 챕터는 "중국은 세계 무대의 중앙으로 전례 없이 다가가고 있다" 는 것이었다. 구체 내용을 보면 개혁·개방 이후 40년간의 발전을 거쳐 과학기술 국방력(군사) 등을 종합적으로 합친 국력은 세계 선두권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이만큼 국력이 커졌으니 이제 국제 문제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세계 무대에서 룰세터(rule setter)로서 나서겠다고 한다.


유위분발(有爲奮發).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제19차 당대회를 마치면서 선언한 내용들이다. 2050년이 되면 경제 군사력에서 미국을 제치겠다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휴브리스(Hubris)이다. 한(韓), 당(唐) 시대의 몽상적 환상으로 달려들어가는 것 같다. 시진핑 2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은 덩샤오핑이 기치로 내건 도광양회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있다.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는, 와신상담보다 약간 격렬하지 않은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제 대놓고 세계 1위 미국을 제치겠다고 전 세계에 선언했다.


20년 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책에서 미국 외의 강국이 출현하지 않도록 유라시아를 관리해야 한다는 경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 당시도 중국의 부상을 염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만약 중국이 강국으로 부상하면 인접 국가가 중국과 한편이 되어 미국에 도전하지 않도록 하라는 게 플랜B였다. 그것이 트럼프가 이번에 인도·태평양 구상으로 인도 호주 일본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이고 한국도 들어오라고 했는데 청와대는 어정쩡한 자세다. 중국은 포위망을 뚫으려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중·일 군사훈련을 거부한 것은 중국에 찬스로 비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문재인을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사설에서 썼다.


중국은 입만 벌리면 세계평화주의자임을 강조한다. 시진핑의 전당대회 종료 연설에서도 "중국은 결코 타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자국의 발전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자국의 정당한 권익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를 못살게 굴지도 않을 것이나 그 대신 중국을 건드리는 그 어떤 세력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으르렁이다. 미국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이말을 곧이 곧대로 들어도 될까. 한국은 북핵을 방어하려 사드 배치를 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중국은 사드 보복으로 1년 이상 괴롭혔다. 노르웨이는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줬다는 앙갚음으로 고등어 수입을 중단했고 영국은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다가 무역 보복이라는 참변을 당했다. 한국에 북핵은 생명이 걸린 일이고, 중국은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해쳤다는 것인데 한국의 생존에는 관심조차 없다.


한국인들은 중국과 같은 유교권 문화이므로 한국이 임진왜란 같은 곤경에 처하면 중국이 금방 편을 들어둘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산다. 그러나 중국에 10년 이상 거주하고 경험한 전문가들은 7년쯤 경과하면 중국의 그림이 상상과 현실이 전혀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고 자술한다. 중국은 문화혁명이후 유교주의를 벗고 철저히 실리주의로 변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 이것이 중국인의 본심이다.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죽어가도 못 본 척한다는 뉴스는 이제 하도 많아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이종오는 후흑학으로 풀이했다. 월왕 구천이 오의 부차에게 생포돼 노예생활을 하며 신임을 얻어 풀려나기 위해 부차의 똥을 찍어먹는 장면이 후흑의 1위다. 조조의 참모 사마의는 평생을 칭병하며 황제를 속이다가 쿠데타를 일으켜 진나라를 세우는 데, 이것이 후흑의 2위다. 얼굴이 한없이 두껍고(厚), 속마음이 오징어 먹물보다 시커먼(黑) 원리로 난세를 속여 승리한다는 원리다. 한중 정상회담이 중국 측 발표에선 빠진 게 그런 그림자가 아닐까. 속임수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 있나?


한 국가의 사회를 움직이는 작용, 간단하게 말해 문화를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고 한다. 국가 특유의 매력 같은 것이다. 시진핑 2기의 중국은 세계 1등이 되기 위해 소프트파워 향상을 담당하는 통일전선(United Front) 조직을 대폭 보강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면 뭐하나. 마음이 후흑하고 타인의 불행에 공감능력이 온전하지 않다면 2050년 중국몽은 일장춘몽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이 다음달 중국 방문으로 이뤄진다 해도 흥분할 것 없다. 작은 환심을 사려 사드 추가 배치 같은 큰 이익을 퍼줘선 안 된다. 냉정하게 미·중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라는 게 국민의 위임이다. 가우의 말마따나 한국은 세계 10위권이면 상당히 강국이다. 향후 국력의 위치를 8위, 7위로 더욱 끌어올려야 미국, 중국이 대접할 것이다. 파머스턴의 말이 맞다. 미·중 누구도 영원한 친구가 아니며 그냥 한국 자신이 영원한 친구일 뿐이다. 사드 보복이 풀리지만 한국은 두 번 속는 바보가 돼선 안 된다.

[김세형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