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중국 관영 매체들은 잇따라 한국에 '3불(不)'의 철저한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제시한 게 이른바 3불이다.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중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제시된 3불이 우려한대로 중국에 추가 압박의 빌미를 제공하며 우리의 안보 주권까지 훼손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중문ㆍ영문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와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ㆍ25일 "한국이 3불을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한 발 더 나아가 '1한(限)'까지 촉구했다. 1한이란 '한반도 배치 사드 사용을 제한한다'는 뜻으로 한국에 배치된 방어용 군사무기 운용과 관련해 중국이 알 수 있도록 공개하라는 일종의 주권 유린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항의했다는 말을 우리는 들은 바 없다.
1한은 환구시보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중국 외교부나 인민일보 같은 주요 기관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다. 하지만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가 사용한만큼 중국 정부의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방중 때 사드 문제가 의제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타임스는 "중국과 한국이 지난 10월 양국관계를 어떻게 회복할지 발표했지만 사드 문제는 여전히 양국의 핵심 의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방중 때 사드 문제가 의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24일 논평에서 "한국이 3불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한중 관계가 낮은 단계로 곤두박질치고 양국 신뢰 관계는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환구시보는 지난달 29일 또 "3불과 함께 1한이야말로 대중(對中)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한국이 취해야 하는 마지노선"이라고 협박했다.
워싱턴 소재 미국평화연구소(USIP)의 프랭크 엄 수석 연구원은 지난달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한중간 이번 합의에 실제로 논란의 소지가 될 내용은 별로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오랫동안 대중 관계를 고려해 MD 편입이나 한미일 군사동맹은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체면도 살릴 방법이 필요했고 한국 역시 기존 정책에 반하지 않는 수준의 양보로 대중 관계 개선을 택했다는 게 엄 연구원의 평가다.
그러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폴 에반스 아시아환태평양 관계학 교수는 "이번 한중 합의가 조약 같은 구속력을 갖고 있진 않지만 한국에 일종의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달 22일 중국이 내놓은 한중 외교장관회담 결과문에 따르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에 '말에는 신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言必信行必果)'는 말이 있다"고 발언했다. 우리 정부가 '약속'이 아니라고 부인한 3불 이행을 대놓고 요구한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옭아맨 결과다.
이렇듯 중국은 이참에 한국의 무릎을 꿇리려 애쓰고 있다. 중국의 오만함이 우리 주권을 훼손하려 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아직 조율 중'이라는 한중 정상회담 의제에서 우리가 과연 뭘 건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무릎 꿇린다는 얘기가 나오니 생각나는 게 있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자리잡은 병자호란 당시 청(淸)나라의 전승비 삼전도비(三田渡碑)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인조는 삼전도에 나가 청나라 황제 앞에서 '삼궤구고두례(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를 올리며 굴욕적으로 항복했다.
역사는 배우라고 있는 것이다. 굴욕은 한 번으로 족하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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