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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美 '조건 없는 對北 대화' 제의, 결정적 순간 다가왔다

바람아님 2017. 12. 15. 09:38


조선일보 2017.12.14. 03:20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12일(현지 시각) "북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제 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하겠다"고 말했다. 기존 입장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현실적"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틸러슨이 대화 발언을 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 낭비"라고 면박을 줬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반응이 없다.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있다. 미국은 대북 군사 조치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북한과 타협하는 길로 가기로 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핵 사태는 김정은의 사실상 승리로 귀결될 길이 열리는 것이다. 미·북 타협은 북핵·미사일 동결과 대북 제재 해제, 한·미 훈련 중단을 맞바꾸는 밀고 당기기가 될 공산이 크다. 어떤 경우든 북핵은 그대로 있다. 심각한 사태다.


반면 틸러슨은 이날 "(북에) 첫 폭탄이 투하될 때까지 이런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도 했다. 제재나 압박, 대화와 같은 비군사적 노력으로 안 되면 '첫 폭탄'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틸러슨은 "매티스(국방장관)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성공적일 것"이라고 했다. 국무장관이 나서서 안 되면 국방장관의 차례이며 군사 조치는 성공할 것이란 얘기다.


어느 쪽으로 사태가 진행되든 모두 지금이 결정적 시기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 CIA가 북핵 레드라인까지 3개월이 남았다고 판단한다는 보도가 심상치 않다. 틸러슨이 최근 중국과의 전략 대화에서 나눈 대화라고 소개한 내용도 놀랍다. 미·중은 유사시 북의 핵무기 확보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며, 미국은 필요에 따라 미군이 휴전선을 돌파해 북으로 가더라도 다시 이남으로 복귀하겠다고 중국에 약속했다는 것이다. 북한 급변 사태나 미국의 대북 군사 조치에 대한 대화가 미·중 간에 오가고 있는 것이다.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같은 날 "바로 지금이 무력 충돌을 피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며 "시간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고 했다. 틸러슨 장관 발언과 종합하면 군사 조치가 그저 엄포가 아니며 북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국의 움직임에서 대북 최후 통첩의 느낌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정황을 볼 때 북이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받아들여 미·북 대화가 열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야 한다. 북이 연일 '핵무장 완성'을 선언하는 것은 '이제 다 끝났으니 협상하자'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는 순간 자신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배수진을 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미국까지 날아올 ICBM만 막으면 된다. 내년에 미국은 중간 선거까지 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 유권자들에게 북핵 관련 성과를 보여주려 한다면 북핵 동결, 제재 해제의 악몽이 펼쳐질 수 있다. 전쟁도 없어야 하지만 미·중·북 타협으로 북이 핵을 갖게 되는 것도 전쟁 못지않은 참사다. 그런데 한국의 운명이 걸린 이 결정적 순간에 한국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