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2.22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한국의 국가이성은 평화 증진과 시민 존중
김정은이 독점한 北은 평화 유린과 인민 枯死
국권만 알고 민권 모르는 中에도 꿇릴 이유 없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국가에도 이성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국가이성을 무리한 비유로 간주하거나 낡아빠진 과거의 유산으로 여긴다.
국가이성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국가 지상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다.
절대주의적 강권(强權) 국가가 국가이성의 미명 아래 인권을 유린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제3제국이나 태평양전쟁 때의 일본이 최악의 사례다.
한국인에게도 국가이성은 의심쩍은 개념이다.
우리 사회를 짓누른 온갖 적폐의 배경에는 독재 정권의 국가주의 패러다임이 자리한다. 국가 발전과 안보를 빌미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눌렀던 시절의 악몽이 생생하다. '국권(國權)이 민권보다 중요하다'고 강변했던 과거의 국가이성을
수용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민권이 국권에 앞선다'는 혁신적 자기 변화를 이룬 새 국가이성의 생명력은 강력하고 보편적이다.
국가가 총체적 위기에 처했을 땐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북핵이야말로 새 국가이성의 설득력을 웅변한다.
북핵 위기의 원점에는 남북 국가이성의 필사적 경쟁이 자리한다. 이는 북핵 사태가 풀리지 않는 근원적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새로운 국가이성과 북한의 낡은 국가이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주공화국 한국의 국가이성은 국민을 위해 있지만 북한 유일 지배 체제의 국가이성은 김정은 1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북한 핵에 일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국 진보는 김정은의 사유물로 전락한 북한 국가이성에 도대체 어떤 정당성이 있는지
답해야 한다. 한국의 새 국가이성이 인류 평화를 증진하고 시민을 존중하는 데 반해 김정은이 독점한 북한의 국가이성은
평화를 유린하고 인민을 고사시킬 뿐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는 고전적 언명은 삶의 진실이다.
'신도 아니고 야수도 아닌' 인간은 정치적 공동체인 국가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는 모든 삶의 근본 터전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국가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해야 하며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특정한 영토에서의 폭력 독점'을 국가에만 허용하는 것도 주권자인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도 국가이성은 필수적이다.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시민적 요구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새 국가이성에 대한 요청이기도 하다.
테러리즘이 발호하고 보편 문명의 잣대가 깨지면서 민주주의에 내재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원칙도
흔들리고 있다. 국가 중심주의의 열풍은 이런 퇴행적 흐름과 맞물린다.
예컨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 새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국'으로 못 박았다.
힘을 바탕으로 한 '미국 우선주의'와 중·러의 반발로 세계열강의 신냉전시대가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불량 국가' 북한에
대해서도 '힘에 의한 비핵화'를 선언했고 북한은 이를 단칼에 일축했다. 한반도 위기 지수의 무한 증폭이 불 보듯 뻔하다.
이처럼 국가이성의 화두는 여전히 강력하다.
국가이성들끼리 부딪히는 무정부 사회인 국제 관계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한국의 국가이성은 북한뿐 아니라 이웃 열강의 국가이성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중국의 행보가 특히 중요하다.
자강론적 호혜 관계를 강조했던 근대 중국과는 달리 현대 중국의 패권적 국가이성이 우리를 직접 겁박하기 때문이다.
방중(訪中) 청와대 기자단이 무차별 폭행당한 사건은 뼛속 깊이 뿌리내린 '우리 안의 공중의식'(恐中意識)을 증명한다.
중국 국가이성이 민권을 하찮게 다루는 데 비해 한국의 국가이성에서는 민권과 국권이 조화를 이룬다는 결정적 통찰에
주목해야만 한국인의 불치병인 '중국 콤플렉스' 치유가 가능하다.
나라다운 나라의 국가이성은 정의로운 국가를 지향한다. 하지만 국가는 정의(正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국가와 폭력의 상호 연관성은 지속된다. 국제정치의 지평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는
본질적 이유이기도 하다. 북핵 위기는 국가이성론이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긴박한 현실 진단임을 입증한다.
우리의 국력과 민주 시민 의식이 고조된 지금은 대한민국 국가이성의 일대 비약의 시기다.
한국의 국가이성은 중국이 꿈꾸기조차 어려운 민권과 우리를 지키는 힘인 국권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국권만 알지 민권을 모르는 중국에 꿇릴 이유가 전혀 없다.
그 누구에게나, 그 어디서도 대한민국의 국가이성은 당당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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