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많이, 직무와 관련 없는 이를 보내는 건 문제다.”
그제 발표된 신임 공관장 39명 명단을 두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상당수가 캠코더인 데 분노했다. 특히 후임(박선원)에 비판적이었다. “공관을 점거했던 인물을 공관장으로 보낼 수 있느냐”라고 했다. 실제로 1985년 대학생들의 서울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의 배후 인물이었다. 구 전 의원의 말에 과장이 섞였지만,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사실 ‘낙하산’은 현실 정치에선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권력을 확보·유지하는 요체는 지지자들에게 충성심을 유지할 정도로 보상한다는 데 있어서다. 돈줄이 막혀 가는 근래엔 그나마 자리가 보상일 터다. 하지만 범절(凡節)이 있는데 감내할 수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최고 권력자와 통화가 가능할 정도로 센 인물이거나 기본기라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면 규모라도 크지 않던가. 지금은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낙하산 논란이 다음 논란으로 덮이는 양상이다. 탁현민 청와대 비서관에게 월급을 주던 이의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발탁 때문에 아우성이다가 이젠 공관장 인사로 곡소리가 나고 있다. 곳곳에서 “민주당 정권이 유독 심하다”고 한다.
권력이 성할 때니 그냥 넘어갈 거다. 하지만 어느 권력도, 자리는 한정됐는데 임기는 5년에 불과하다는 데서 기인하는 ‘낙하산의 지체된 반동’을 피하지 못한다. “한두 해는 연락 오길 기다리며 참지만, 이후엔 씹는다. 한 명 발탁될 때 물먹는 건 수십, 수백 명이다”(전 정권 인사 담당자)는 필연이다. 성심성의껏 나눠준들 모두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정부는 매머드급 대선 캠프를 꾸렸으며 비서관·감사면 족할 인물들에게 종종 장관·기관장을 선사했다. 낙하산의 후보군도, 기대치도 키웠다는 의미다. 물먹는 이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GM의 23년 최고경영자였던 앨프리드 슬론은 “우리가 사람을 적재적소에 임명하는 사안에 4시간씩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우리의 실수를 처리하느라 400시간을 소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권이 이제라도 명심해야 할 조언이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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