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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서울·교토·연변 하나로 이어준 윤동주 '서시'의 매력

바람아님 2018. 1. 7. 09:01
중앙일보 2018.01.06. 01:01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2017년은 윤동주시인 탄생 100주년의 해였다. 그의 생일인 12월30일에 맞춰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명동촌을 방문했다. 이곳은 시인의 고향이자 생가와 묘소가 있는 곳이다.


중국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나는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을 때 불안해졌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서였다. 연변까지 버스를 타고 5시간을 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중국어 공부를 하고 올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그런데 연변의 중심인 연길 시내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글표기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언어가 심리적으로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윤 시인은 한국 시인 중에서도 일본에 가장 많이 알려진 시인이다. 팬도 많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인데 그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있는 시비(詩碑)를 알고부터다. 윤 시인은 도시샤대 재학 중이던 1943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지 50년이 되던 해인 1995년 도시샤대 재일코리안 졸업생들이 중심이 돼 시비를 설립했다고 들었다. 몇년 전 이 시비를 찾아오는 한국 여행객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가봤더니 실제로 10대나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행객들이 잇따라 찾아와 꽃이나 편지를 바치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토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담당했던 나는 2015년 2월 시인의 70주기에 맞춰 그 시비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취재를 하면서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윤동주 시인의 열정적인 팬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시샤대는 물론, 그 전에 시인이 다녔던 도쿄 릿교대학이나 옥사한 후쿠오카에서도 매년 기일에 가까운 2월 중순이면 추모 행사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또 탄생 100주년인 지난해 10월에는 윤 시인이 도시샤대 친구들과 같이 소풍을 갔던 우지천(川) 가까이에도 새로 시비가 세워졌다. 남겨진 그의 마지막 사진이 촬영된 그 곳에 시비를 세우기 위해 일본 팬들이 모금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윤 시인에게 마음이 가는 첫번째 이유는 작품의 매력이지만 그의 비극적인 인생도 큰 이유가 됐으리라. 일본에서 윤 시인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유명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라 자신의 에세이에 윤 시인의 작품과 그의 인생에 대해 쓰면서다. 그 에세이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도시샤대의 시비와 마찬가지로 그 에세이에 등장하는 시도 윤 시인의 대표작 ‘서시’다.


물론 일본어로 번역돼 있는데 둘 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부분이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뜻으로 쓰여 있다. 번역자는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번역한 것이라고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잘못된 번역이라는 지적이 많다. 나는 시비를 다루는 기사를 쓰면서 이 번역을 그대로 게재하면 안 될 것 같아 원어의 뜻을 같이 전달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모든 죽어가는 것’ 중 하나가 ‘조선어’였던 것 같다.


조선인이지만 조선어를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시대. 윤 시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조선어로 시를 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젊은 나이에 죽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기에 일본 독자들도 정확한 뜻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말을 빼앗긴 적 없는 일본 사람들은 그 아픔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을 나는 윤 시인에게서 배웠고, 보다 많은 사람이랑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관련 이야기를 여러 번 글로 쓴 바 있다. 시인의 탄생 100주년은 지났지만, 그의 묘소 앞에서 약속했다. 앞으로도 시인의 정신을 잘 기억하고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이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