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포럼>佛 살려내는 '마크롱 노동개혁' 비결

바람아님 2018. 1. 16. 10:10
문화일보 2018.01.15. 12:10


‘마크롱 고꾸라지다’. 지난해 8월 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제목이다. 39세에, 창당 1년도 안 된 신생 정당으로 기존 거대 정당들을 거꾸러뜨리고 극우 돌풍을 잠재우며 혜성같이 나타나 대통령에 당선돼 프랑스의 정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석 달 뒤의 기사다. 취임 당시 60%를 웃돌던 지지율이 100일 만에 36%로 급전직하(急轉直下)한 것이다. 프랑스 5공화국의 역대 대통령 8명 중 가장 빠른 속도의 하락이었다.


그런데도 마크롱은 개혁 추진에 거리낌이 없다. 노동개혁과 세제 개편, 재정 지출 감축이 최우선 순위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법인세 인하와 부유세 감면, 공공부문 축소와 전방위적 예산 삭감이 추진되고 있다. 침체 일로였던 프랑스 경제를 살리고 치솟기만 하던 실업률을 잡기 위한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강공책이다. 당연히 반발이 뒤따랐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고 연금생활자의 불만은 고조됐으며 국방 예산 삭감에 항의해 합참의장은 사표를 던졌다. 마크롱은 ‘부자들의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었다.

취임 200일이 지난 지금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인기 없는 개혁 정책을 밀어붙이며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마크롱의 지지율이 지난해 10월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지금은 53%이고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노조의 반발도 잦아들었고 비판의 목소리도 한결 잠잠하다.


이제 프랑스 경제는 활력을 되찾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바닥을 헤매던 성장률이 지난해 1.9%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소폭이나마 하락세를 보여 전체실업률은 9.7%,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21.8%로 떨어졌다. 사실 경제 회복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대다수 국가의 현상이라 마크롱 개혁의 효과로만 보긴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기침체, 실업률의 고공 행진, 잇따른 테러 등으로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프랑스에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 사고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국민 중 국가의 미래를 낙관한다는 사람의 비율이 2011년 44%에서 현재 59%로 15%포인트나 올랐다. 비관과 체념에서 낙관과 희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마크롱표(標) 개혁의 최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마크롱은 이제 ‘부자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크롱의 개혁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프랑스 노동법은 성경보다 두꺼운 3448쪽이나 된다. 좌우파 정권을 막론하고 지지 기반의 입맛을 맞추느라 선심성으로 땜질식 처방을 남발한 결과다. 마크롱은 만성적 고실업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이 괴물 같은 노동법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300시간에 걸친 노조와의 담판을 통해, 그리고 대(對)국민 호소를 통해 설득했다. 더욱이 마크롱표 개혁 정책은 친기업 고용 유연화 정책이 전부가 아니다. 실업 급여의 증액, 자영업자의 실업보험 가입 허용, 직업훈련 프로그램 대폭 개선 등 북유럽식 복지 제도를 과감히 도입하고 있다. 기업 활동 여건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근로자의 권리와 역량, 그리고 기회를 증진하려는 균형 감각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 균형 감각을 바탕으로 희망의 확산을 불러오고 있는 마크롱의 프랑스를 보면서 편 가르기, 일방통행, 희망의 실종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