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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U.S. View >올림픽 뒤에 닥칠 진실의 순간

바람아님 2018. 1. 18. 09:35
문화일보 2018.01.17. 12:10
판문점 남북당국회담 직후인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매티스(오른쪽)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세 번째) 국무장관 등과 워싱턴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열고 한반도 정세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David Straub


트럼프, 오바마보다 對北 유연
北·中, 한·미동맹 종식 공감대
남북대화는 美의 北압박 덕분
한반도 운전대는 김정은 손에
北 위장 평화공세 후 도발
北核 노림수는 北주도 통일


남북대화와 스포츠 교류, 긴장 완화 문제가 갑작스레 모든 논의의 중심이 됐다. 김정은의 신년사로 촉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은 없을 것, 북한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평양과의 대화에 열려 있는 듯하다면서, 남북대화를 위해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외교적 노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했다. 속마음이 어떻든 한반도 정세의 주요 당사자들이 모두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하기를 기대하며 덕담을 주고받는 분위기로 선회했다.


문 정부는 드디어 대북 운전석에 앉게 됐다고 자신하는 분위기다. 정말 그럴까. 김정은이 남측의 대북 제안에 관심을 표명한 것은 문 대통령 취임 8개월 만이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취임 4일 만에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쏘았고, 지난해 11월 말 ‘화성-15’형을 포함해 다섯 차례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실험을 했다. 이것은 미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9월엔 역대 최대 규모인 6차 핵실험을 했는데, 북한은 그것이 수소폭탄 실험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이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한국과 좀 더 나은 관계를 맺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핵탄두 보유를 입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전술을 바꾼 것일까. 연쇄 핵·미사일 도발로 중국마저도 유엔의 대북 제재 대열에 합류한 탓에 진짜 체제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문 대통령이 미 측에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공개적으로 압박했기 때문일까.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대화 재개 노력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시 주석이 권력을 강화해온 이후, 중국공산당은 한·미 동맹 종식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북한과 공유하고 있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쌍중단(雙中斷)을 지지하고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조건으로 북한이 잠정적으로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다는 구상인데, 여기엔 북한의 다른 핵·미사일 개발은 논외다. 실험만 중단하면 뒤에서 개발 활동을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협상을 병행하자는 쌍궤병행(雙軌竝行) 주장도 펴고 있다. 북한이 평화협정 그 자체보다 다른 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1990년대 말 4자회담이 진행될 때부터 잘 알려져 있다. 실제 원하는 것은 미·북 평화 선언이고, 그것을 통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다.


한·미 정상도 모처럼 외교 공조 모양새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code)’을 간파한 듯하다. 문 대통령은 남북 당국회담을 전후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한국이 미국과 충분히 협의하며 남북대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 덕분에 남북대화가 이뤄졌다며 감사를 표했다. 어린아이처럼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한국의 대화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위장평화 공세로 한국을 유혹해 미국 주도의 국제 대북 제재 공조 전선에서 이탈시키려는 것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면 진실의 순간이 닥칠 것이다. 이쪽에서 무엇을 해줘도 북한은 곧 추가적인 도발에 나설 것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완전한 중단도 요구할 것이다. 한·미 양국이 평창 패럴림픽 후 연합훈련을 재개할 경우, 북한은 그것을 추가적인 핵·미사일 실험 핑계로 삼거나 다른 도발을 할 것이다. 그럴 때 한·미 양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정은이 자신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반응할까.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재확인했다. 그래서 문 정부는 지난주 미국 측과의 외교적 협의에서 제재 이행과 긴밀한 동맹 협의, 도발에 대한 강력 응징, 궁극적 북한 비핵화라는 4대 대북 원칙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현존하는 제재를 단순히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진정성을 갖고 응하겠다는 표시를 할 때까지, 대북 압박은 그저 지속되는 수준이 아니라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문 정부의 기류는 국제 제재 공조를 약화시킬 태세다. 북 비핵화는 이미 심각한 도전 과제다. 북한의 핵탄두가 30여 개 수준이 아니라 300여 개인 상황에서도 궁극적 비핵화란 지향점이 실효성이 있는 것일까.


운전석과 관련해 자동차 안에 누가 앉아 있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자. 운전대를 잡고 방향을 정하는 사람은 김정은이다. 전략적 비전을 갖고 북한 체제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관철해낸 게 바로 김정은이다. 김 씨 왕조는 핵 위협을 통해 한·미 동맹을 끝장내고 한국을 좌지우지하려는 열망을 추구해왔다. 다행히도 문 정부의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그런 의도를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고 인정했는데(월스트리트저널 11월 16일자), 정권 차원에서 언제 정확한 깨달음에 도달할지, 임기 중에 그런 날이 오기나 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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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76년 미 국무부에 들어가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참사관, 한국과장 등을 역임한 뒤 2006년 퇴직, 한·미 관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저술했으며 현재 세종연구소 세종-LS 객원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