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8-01-20 03:00
‘방문 하루전 통보’ 결례에도… 정부, 4시간만에 北요구 수용
심야 전격 취소로 뒤통수 맞아… 北 설명도 사과도 전혀 없어
“北에 일방적 끌려다녀” 지적
평창 올림픽에 대한 여론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올림픽에서 뛸 선수단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예술단 동선부터 먼저 점검하겠다는 북측에는 “선전 갑질”이라는 비판이, ‘방문 하루 전 통보’라는 외교적 결례도 마다않고 수용한 정부엔 “김정은에게 잔치 못 열어줘서 안달”이라는 비난까지 나오던 찰나였다.
○ 북한의 기습 통보에도 4시간여 만에 화답
이날 밤늦게 판문점 연락소에 도착한 북측 통지문은 간단했다. “예술단 사전점검단의 지역 파견을 중지하겠다.” 파견을 중단한 이유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나절 전 온 통지문을 완벽히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오전 9시 30분 개시 통화 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20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1박 2일 체류하는 일정으로 보내겠다’고 보내온 통지문에 기초해 후속 일정을 차분히 협의하던 중 맞은 날벼락이었다.
15일 예술단 파견 관련 남북 실무접촉 후 나흘 만에 북측이 보낸 파견 통보는 기습적이었다. 실무접촉 직후 이우성 남측 수석대표가 “공연장 선정을 최종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오는 걸로 저희도 희망하고 있다”고 했지만, 방문 전날 통보까지 예상한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합동 업무보고 도중 부하 직원으로부터 긴급 메모를 전달받았고, 통일부는 4시간여 만인 오후 2시 45분 북측에 ‘동의한다’고 회신했다. 2시간 뒤엔 현송월 등 점검단이 머물 숙소와 강릉을 먼저 둘러본 뒤 서울로 올라오는 식의 동선을 담은 체류 일정까지 북측에 통보했다.
○ 북한의 ‘매력 공세’가 한방 먹였다
이번 사태는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에 몸이 단 문재인 정부를 들었다 놨다 하며 확실하게 한반도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현송월을 전면에 내세운 ‘매력 공세(charm offensive)’ 전술이 대표적이다. 주말 동안 서울과 강릉을 돌며 남측을 휘젓는 유명인과 그 일행들로 우리 국민들의 시선을 빼앗고 스포츠 행사라는 본질을 흐리려 했다는 것이다. 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사용으로 남남 갈등을 겪고 있는 여론을 더 분산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사전점검 단장으로만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인 현송월이라는 실세를 보냈으니 한국 정부도 성의를 보이라’는 식으로 북한이 올림픽 이후 ‘평창 청구서’를 들이밀었을 것이다.
북한이 벌인 현송월 파견 취소로 안 그래도 북한발 ‘평창 드라이브’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여론은 더 확산될 듯하다.
실제로 북한은 2014년 9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선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한 뒤 전격 취소한 사례도 있다. 북한은 당시 7월 열린 남북 실무회담 때만 해도 경의선 육로로 350명의 대규모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8월 말 돌연 취소했다. 북한 올림픽위원회 손광호 부위원장은 북한 조선중앙TV의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관한 시사논평’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남관계 개선과 민족 화해와 단합을 위해 큰 규모의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했으나 남측이 응원단 파견을 우려하면서 시비하고 바라지 않는 조건에서 응원단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며 전격 취소 사유를 밝혔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홍정수 기자
방남 전격중지에 정부 '당혹'..北, 현송월 파견 왜 멈췄나
연합뉴스 2018.01.20. 01:02
일사천리 진행되던 '北 평창참가' 논의에 미칠 영향 주목
북한이 20일 오전으로 예정됐던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예술단 사전점검단 방남 계획을 19일 밤 10시에 중지하겠다고 갑자기 알려오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북한이 우리 측에 사전점검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날 오전 10시 전후로, 통지 12시간 만에 20일 방남 계획을 갑자기 취소한 것이다. 북측은 파견 중지를 우리 측에 통보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인사의 첫 남측 방문이 실행 직전 취소되자 통일부도 상당히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이 취소를 할) 조짐이 전혀 없었다"면서 "내일도 판문점 연락 채널을 가동하니 이유를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파견 중지 배경을 놓고 남북이 사전점검단의 방남 일정 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남북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지금까지 논의해 온 과정을 보면 서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무난하게 진행해 온 분위기여서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선 북측 내부적으로 준비가 덜 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랬다면 관련 설명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우리 언론의 큰 관심에 북측이 부담을 느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남북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현송월 일행에 대한 남측 언론의 취재방식을 놓고 논의를 진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북측은 최대한 언론에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되자 전격 연기한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현송월을 놓고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설이 남측 일각에서 계속 나오는데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에선 19일 진행된 외교안보부처의 신년 업무보고 내용이 북측을 자극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 위주로 논의됐을 뿐 특별히 북한이 불만을 느낄 대목은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측이 특별한 이유 없이 '남측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지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1일 신년사 이후 보여온 적극적인 태도를 보면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이번 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관련 남북 간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사전점검단의 방남이 완전히 취소된 것은 아니고 중지"라며 다시 일정이 통보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계획 전체가 삐걱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평창올림픽 개막이 불과 20일밖에 남지 않아 최대한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서 전격적인 방남 취소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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