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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세기의 철학자들 폭력을 말하다] 우리는 폭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바람아님 2018. 1. 23. 11:00

(내일신문 2018-01-19)


세기의 철학자들 폭력을 말하다

브래드 에번스 등 지음 / 고은주 옮김 / 다른 / 1만4000원


한나 아렌트,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 등 쟁쟁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짧은 만화로

재구성한 책이 나왔다. 신간 ‘만화로 보는 세기의 철학자들 폭력을 말하다’는

특히 세상에 만연한 폭력에 천착했던 철학자 10명을 모아 그들의 삶과 통찰을

각각 10여페이지 남짓한 글과 그림으로 요약했다.


철학자들은 자기 삶의 궤적에 따라 폭력의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누가 폭력을 저지르는가’라는

질문에 탁월한 답을 제시한 바 있다. 유대인 대학살의 실행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아렌트는 어떤 미치광이가 광기에 사로잡혀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며

어느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다.


프란츠 파농 폭력에 대한 사유도 흥미롭다.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태어나 정신과 의사가 됐지만 알제리 등의 독립운동에 투신한 혁명가이기도 했던 그는

사회의 폭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사유했다. 그가 목격한

식민 지배자들이 피식민인들의 인격을 파괴하는 과정을 분석해 어떻게 식민지 민중들이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를 말한다. 그의 유명한 저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서문을 쓴

장 폴 사르트르는 파농이 마치 ‘폭력 옹호자’인 듯 설명했지만 이 책에선 사르트르가 파농을 오독했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더 많은 폭력 대신 품위 있는 해결책은 없는가’를 고민했다고 설명한다.


심심풀이로 만화책이나 읽어 볼까 싶어 집어 들기에는 내용이 무겁다.

한 번 읽어서는 독해 불가능한 철학적 개념이 페이지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다만 어려운 내용을 그림을 곁들여조금이나마 쉽게 읽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집는다면 알맞다.

10명의 철학자들이 던지는 폭력에 대한 핵심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여러 현상들이 폭력이라는 프리즘으로 새롭게 보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