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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풀어 보세요

바람아님 2018. 2. 7. 08:26
아시아경제 2018.02.06. 13:23
김수영 작가

2014년 미국여행 때의 일입니다. 당시의 저는 겉보기에는 팔자 좋은 세계 여행가였지만, 번 아웃 증후군의 후유증으로 영혼이 방전되어 버린 상태였고, 실연의 아픔으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그런 제가 시카고에 간다고 하자 친구가 시카고에 사는 지인에게 저를 좀 챙겨달라고 부탁한 모양입니다. 감사하게도 그 지인 분은 제 숙소까지 와서 절 픽업한 다음 시카고 곳곳을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맛있는 점심도 사주시고, 자신의 아내가 운영하는 네일샵에 데려가 매니큐어와 페디큐어까지 받게 해주셨죠. 저녁시간이 되자 그분은 고급스러운 중국식당으로 저를 데려갔고, 랍스터부터 시작해 온갖 비싼 요리를 시켜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저녁식사는 제가 대접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분이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지요.


"제가 미국에 처음 이민 왔을 때 사기를 당해서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먹고살기 위해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했죠. 한국에서는 잘나갔던 제가 육체노동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자녀들 앞에서 면목이 없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사장님께서 저희 가족들을 이 식당으로 불러 온갖 비싼 음식들을 사주셨어요. 아이들은 간만에 신나서 열심히 먹었지요. 그 사장님이 이민 와서 해보지도 않은 일하면서 고생이 참 많다며 자신이 처음 이민 왔을 때 고생한 얘기를 해주시더군요. 그때 결심했어요. 내가 나중에 성공하면 사람들에게 똑같이 베풀어 주겠다고."


고군분투 끝에 그 분은 현재 3개의 사업체를 가진 사장님이 되었고 이렇게 베풀 수 있는 위치가 되어서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마 식사비를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나중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지요. 살면서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그 분이 베풀어준 친절은 당시 우울하고 슬펐던 저에게 너무나 크고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베풀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다행히도 그 기회는 금방 찾아왔습니다. 아직까지도 내전의 아픔이 깊은 콜롬비아에서 고아 730명을 키워낸 '처녀엄마'를 만났거든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구해오려다 게릴라들에게 수도 없이 납치를 당하고 총살당할 뻔도 했지만 신념을 가지고 상처 입은 아이들의 삶을 치유하고 성장시켜온 그녀의 고아원 증축공사에 공사비를 보탰습니다. 그날은 마침 제 생일이었기에 더욱 기분이 뿌듯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우간다에서 우연히 만난 플로렌스 커플도 그랬습니다. 평생을 학대당하고 살다가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네 아이를 키우던 그녀는 재활용 주사기에 감염되어 에이즈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오히려 품어주고 지켜주는 남편 레오와 그런 남편에게 한없이 감사하고 존경하는 플로렌스의 모습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병원비로 많은 빚을 진 그들의 꿈은 다시 재기해서 아이들이 학교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저는 그들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종자돈을 지원했고, 그 돈으로 그녀는 시장에서 옷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장사가 꽤 잘되어 아이들의 학비를 더 이상 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제게 주기적으로 이메일을 보내 자신들의 소식을 알립니다.

이 모든 베풂에 대해서 저는 아직까지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베풀고 나누기 위해서라도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때로는 이렇게 아무것도, 심지어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조차 기대하지 말고 그냥 누군가를 돕는 그 자체에서 기쁨을 얻어 보세요. 엄청난 도움이 아니어도 됩니다. 꼬부랑 할머니의 리어카를 뒤에서 같이 밀어줘도 좋고,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줘도 좋고, 내 뒤에 있는 동료의 커피를 슬쩍 미리 계산해놓을 수도 있겠지요. 가까운 사람에게 베푸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묘하게도 내가 베푼 만큼 돌려받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본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돌려받는 것에 대한 집착 없이 선행을 행하는 좋은 방법이지요.


결국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또한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 는 행위는 모두 내게로 돌아옵니다.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마디도 결국 내 귀로 돌아오고, 타인에게 주는 작은 호의도 결국 내 마음이 압니다. 결국 도움을 받은 사람보다 당신이 훨씬 더 행복해 질 겁니다.


김수영 작가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